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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턴의 조건] 기업사냥꾼 막을 '경영권 방패'가 없다

코스닥 활성화 정책 다시 짜야
빗장 풀린 상법 개정안
소액주주 보호서 출발했지만 대주주 전횡 방지 위한 방안이 외국 투기 자본에 날개 달아준 격

[J턴의 조건] 기업사냥꾼 막을 '경영권 방패'가 없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 골자다. 소수주주의 경영권 참여를 확대해 대주주의 의사결정권 전횡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과도하게 대주주의 권한을 견제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집중투표제 등 논란

국회에 계류 중인 20여개의 상법 개정안 가운데 논란이 되는 법안 중 하나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저해를 막기 위한 법안이다.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되는데, 사외이사가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기존 법안에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한 후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출했다.

따라서 감사를 선출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기존의 법은 감사를 감사위원회로 대체하거나, 감사위원회 위원 선출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이 사실상 모두 반영됐다.

이번 개정안은 감사위원이 될 이사와 다른 이사를 분리 선출해, 감사위원 이사 선임 시 대주주의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게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사의 업무 집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감사가 대주주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을 보장받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역시 대주주 견제장치 중 하나로 해석된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1주마다 선임할 이사의 수와 동일한 의결권을 갖고, 그 의결권을 후보자 1인 또는 여러 명에게 집중해 투표하는 것이다. 지난 1998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됐지만, 대부분 기업이 정관을 통해 배제하고 있어 유명무실했다.

쟁점 중 하나인 다중대표소송제는 모기업의 소수주주 보호 취지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모회사의 소수주주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자회사 임원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있고, 소송이 청구된 후에도 자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소수주주 의결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경영권 행사 위축 우려 목소리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경영권 행사가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법 개정안 통과 시 외국 투기 자본에 의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고, 방어 비용 부담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업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해 1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 상황과 경영 여건을 고려할 때 기업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법 개정안 통과 시 소수 지분을 가진 외국계 투기자본들이 규합해 자기들 입맛에 맞는 감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높다"며 "집중투표제로 이사가 선임될 경우 회사 전체가 아닌 자신을 선임해준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2006년에는 '기업 사냥꾼'이라 불리는 미국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이 집중투표제를 악용해 헤지펀드측 사외이사 1인을 진출시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고 1500억원의 차익을 실현하고 떠난 사례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2~3대 주주나 해외 투기자본들이 이사회에 진출해 회사를 압박하고 부당한 이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해외 입법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제도를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안 통과 불투명

현재 상법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최근 경제지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 경영권 행사를 위축시키는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향후 상법 개정안이 소수주주 보호라는 취지는 살리되 대주주의 대응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도입하기 전에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제도) 같은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은 수준으로 외국인 주주들이 이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상법 개정안이 기업의 경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담은 만큼 대주주의 대응권 보장 등 균형감 있게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jk@fnnews.com 김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