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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턴의 조건] '상생'이란 명분아래 지나친 규제… 득보다 실이 컸다

꽁꽁 묶인 유통산업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 등 유통법개정안 33건 국회 계류
골목상권 보호 취지 공감하나 산업 위축·성장둔화 우려

[J턴의 조건] '상생'이란 명분아래 지나친 규제… 득보다 실이 컸다

국내 유통산업이 '상생 프레임'에 갇혀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골목상권과 소상공인 보호 등의 명분으로 시작된 정부의 각종 규제에 손발이 묶이면서 '성장판'이 점점 닫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종 규제가 당초 기대했던 효과는 커녕,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유통산업 규제에 대한 전반적인 'J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규 출점? 꿈도 못꿔"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019년 유통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규제'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적용 중인 월 2회 의무휴업일을 복합쇼핑몰에도 확대·적용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비롯해 국회를 중심으로 각종 규제 관련 입법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을 비롯해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만 총 33건에 이른다. '유통산업발전'이라고 명명되어 있지만 대부분 상생이라는 명분 아래 규제 대상이 되는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과 휴일휴업일 지정을 늘리고, 점포 신설 절차를 보다 까다롭게 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유통업계로서는 골목상권,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인한 성장 둔화로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오프라인 출점이 필요한 곳은 분명 아직도 존재하지만 사실상 손발이 다 묶여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라면서 "신규 출점은 각종 규제와 상생을 이유로 한 정서법 등에 막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의 온라인사업 강화의 이면에도 '규제'가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신규 출점을 통한 성장 동력 마련이 어려워진 만큼 이커머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급기야 경제계를 대표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회에 복합쇼핑몰 규제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촉구했다.

대한상의는 "복합쇼핑몰과 전통시장·소상공인은 주업종이 달라 경쟁관계가 크지 않다"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등 경제적 약자 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복합쇼핑몰 규제 시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상의는 "복합쇼핑몰 규제는 입점상인, 주변상권,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 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규제도 필요… 단순 분리 No"

국내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은 유통선진국의 흐름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과 프랑스, 일본, 중국 등은 유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혁신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프랑스·일본 유통 산업규제 변화 추세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와 일본은 일찍이 유통 산업에 대해 출점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 등 현재 국내와 같은 유통 규제를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나친 유통 규제로 영업 활동의 자유와 경쟁이 제한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일본은 2000년, 프랑스는 2008년을 기점으로 사업 조정 중심의 규제를 철폐했다. 미국과 중국도 대규모점포에 대한 진입 및 영업규제가 없으며, 중국은 오히려 ICT 융합을 통한 유통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물론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해외의 흐름을 마냥 좇을 수만은 없다.

한국 유통산업 규제의 '롤 모델'과 같았던 일본의 경우 규제 철폐의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는 소상공인들의 도태다. 각종 규제를 통해 보호하려 했지만 기존 상점의 퇴출을 지연할 뿐 유통산업 구조 전환의 큰 흐름을 막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규제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일본과 비교해 2~3배의 소상공인들이 존재한다.

마냥 규제를 풀고 자율 경쟁에 맡기기에는 불합리한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박주영 숭실대 교수는 "아직 국내 유통산업 구조를 감안할 때 규제를 급격하게 풀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만 과거 일본처럼 대기업과 중소상공인 등을 분리하는 목적의 규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는 하되 서로 실질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필요하다면 규제도 풀어주는 '스틱 앤 캐럿(채찍과 당근)'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는 "무조건 규제를 다 풀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의 필요가 있지 않냐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