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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디지털 벽에 가로막힌 국민銀 노조 파업

국내 최대 KB국민은행의 노조가 8일 파업했다. 지난 2000년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다.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평균 연봉 9000만원대 직장인들이 돈을 더 받겠다고 벌인 파업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기득권 귀족노조의 욕심이란 비판을 듣는다. 은행 노조의 파업을 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2000년 파업은 명분이라도 섰다. 외환위기가 터진 뒤 국내 금융산업은 통폐합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당시 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 합병을 앞두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해고를 우려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절박한 이슈도 없다. 회사가 강제로 인력을 줄이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모로 보나 8일 파업은 가진 자의 욕심이란 지적을 받을 만하다.

역설적으로 이번 파업은 은행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총 1만7000명 직원 가운데 5500명(노조 추산 9000명)이 파업에 참가했지만 은행은 별 탈 없이 잘 굴러갔다. 이미 거래의 90%가 PC·스마트폰 등 온라인으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이는 점포, 곧 인력 중심의 오랜 영업시스템이 낡아빠진 모델임을 보여준다. 현재 KB국민은행은 전국에 1000개 넘는 점포를 두고 있다. 과연 이들 점포가 다 필요할까.

애물단지 영업점 축소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 빈자리를 디지털이 채운다. 국내에선 한국씨티은행이 물꼬를 텄다. 이 은행은 2017년에 전국 126개 소매점포 가운데 90개를 없애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그 대신 은행원들은 고용을 보장받았다. 점포를 70% 없앴지만 한국씨티은행은 끄떡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은행 노조는 예전과 같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다. 어떤 업종도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전통 은행 노조의 구태의연한 파업은 마치 허공에 종주먹을 들이대는 격이다. 헛수고다.
고객들 앞엔 대체재가 널려 있다. 인터넷은행을 비롯한 핀테크 업체들은 빈틈을 노린다. KB국민은행 노조는 파업이 아니라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미래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