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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졸속 준비로 CES 흉내만" vs "일반에게 우리 혁신기술 선보여"

한국판 CES, '한국 전자IT산업 융합 전시회' 가보니 

[현장르포] "졸속 준비로 CES 흉내만" vs "일반에게 우리 혁신기술 선보여"
29일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서 개막한 '한국 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이 홍체 인식기반 건강 진단 솔루션인 '아이어클락(Eye O'Clock)'을 체험해 보고 있다. 사진=한영준 기자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지 않아도 혁신제품을 볼 수 있는 한국판 CES'를 표방한 한국 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가 29일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했다.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9'에 참여한 국내기업 35곳은 이날 부스를 차리고 일반인들에게 자신들의 혁신기술을 선보였다.

행사장을 찾은 일반인 관람객들은 "대기업 뿐 아니라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이런 기술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CES를 직접 경험한 관계자들은 "급하게 만들어진 티가 난다. 규모도 작고 제품들도 제대로 볼 수 없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CES 참여기업 9곳 중 1곳만 참여 "시연도 제대로 안 돼"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는 전 세계 160개국 4500여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한다. 우리나라 기업만 317곳이 참여했다. 그러나 '동대문 CES'라 불린 이번 행사에 참여한 기업은 35군데뿐이다. 한 전시 관계자는 "CES 2019에서 삼성전자 혼자서 차린 전시관이 이곳 전체 전시장 크기와 비슷한 것 같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CES를 관람하기 위해 매년 미국을 찾는다는 한 스타트업 대표도 "대기업들이 올해 초 CES에서 전시한 제품 일부만을 단순히 뚝뚝 떼어다 전시한 것 같다"며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각 기업들의 '스토리'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가 너무 급하게 추진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기업들은 CES와 같은 주요 전시회의 경우 개막 몇 달 전부터 현장에 나가 전시를 준비하는 것에 반해, 이번 행사는 개막 열흘 전 기업에 통보하고 일주일 만에 준비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로부터 지난 18일 전시에 참여해달라는 통보를 받고 실무진 회의를 거쳐 전시 3~4일 전에 부랴부랴 부스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 관람객은 입구에 들어서며 "여기는 브로셔(안내책자)도 없네?"라며 당황해 했다. 실제로 책자와 안내 사이트도 개막 당일까지 준비되지 못했고, 행사를 총괄하는 사무국 조차 없었다. 행사 관계자는 "10일 만에 준비하다 보니 그런것도 있고, 기업도 많이 오지 않아서 가성비가 안 맞아 (안내책자를) 만들지 않았다. 크지 않은 곳이라 그냥 직접 둘러봐도 금방 다 보신다"고 답했다.

일부 부스에서는 시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CES에서는 우리의 대표 제품 3개를 시연했다"고 설명했지만 단 한 제품도 시연하지 못했고 소개 모니터는 꺼져 있었다. 이 관계자는 "CES에서는 부스가 1.5배 정도 커서 제품을 편하게 시연했지만 지금은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시연을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CES에서 제품들이 항만으로 넘어오는 중인데, 이번 행사가 잡혀서 경기도에 있는 사무실에서 부랴부랴 부품을 공수해왔다"고 전했다. 한 중견기업 부스 담당자는 관람객들에게 "CES 현장에서 급하게 오다 보니 제품 설정이 제대로 안 돼 있다"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각 기업의 주요 임원진이 총출동하는 CES 2019와 달리, 동대문 CES에는 참가업체의 주요 임원조차도 참여하지 않았다. CES에 매년 얼굴도장을 찍는 '모범생'으로 꼽히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이번 행사에 예정된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일반 관람객 "가족과 손 잡고 혁신기술 즐겨"
다만 일반인 관람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개막 직후에는 VIP와 취재진만이 보였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관람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자녀의 손을 잡고 온 한 주부는 "남편이 인터넷에 보고 오자고 했다"며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다가 LG 부스에서 로봇을 보고 신나하더라"고 말했다. LG전자는 'CES 2019'에서 선보였던 롤러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 뿐 아니라 웨어러블 로봇도 전시관에 갖다놨다. 다만 CES 2019에 전시된 로봇 전 종류를 전시하진 않고, 공항 안내 로봇만 선보였다.

삼성전자관 앞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대통령 말 한 마디로 행사가 뚝딱 만들어졌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와봤다"며 "와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신기한 기술이 있는지 몰랐다. 30분 넘게 둘러봤는데 구석구석 더 둘러봐야겠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75·82·98형 8K 퀀텀닷 발광다이오드(QLED) TV를 전면에 전시했다. 원하는 크기로 뗐다 붙일 수 있는 모듈형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도 전시됐다. 동시에 올해 초 'CES 2019'에서 큰 관심을 받았던 디지털 콕핏을 배치하고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네이버와 SK텔레콤 역시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의 다양한 기술을 전시했다.

일반인 관람객들이 많아지면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부스에 사람들이 몰렸다. 홍체 인식기반 건강 진단 솔루션인 아이어클락(Eye O'Clock)을 만든 '홍복' 부스에는, 자신의 눈을 진단하려고 하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홍복의 남궁종 대표는 관람객들의 홍체를 찍고 직접 건강상태를 진단해 줬다.
남궁 대표는 "아이어클락은 세계 최초로 개발된 눈 기반 인공지능 진단 솔루션"이라며 "치매환자들의 홍체 데이터를 활용해 홍체만 찍으면 치매 증상을 판단해준다. 향후 다양한 증상에 대해서도 자동으로 진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스마트폰과 손목 밴드를 활용해 케이팝(K-pop) 안무를 연습하는 앱을 개발한 키네틱랩에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관계자들이 찾아 춤을 추며 행사를 즐기기도 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권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