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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전세빚 750조원, 안정화 대책 시급하다

저금리·규제완화 틈타 급증
반환보증 의무화 검토하길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하락하고 있다. 그중에도 전셋값 하락이 폭과 속도 면에서 두드러진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3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15주 연속 떨어졌다. 집값·전셋값 동반하락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집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초반에도 떨어졌지만 당시에는 전셋값 상승이 받쳐줬다.

집값·전셋값 하락은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의 폭등세를 감안하면 경제 전반에 긍정적 요인이다. 부동산 시장을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투기 바람이 진정된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급격한 가격 하락은 또 다른 불안요인이다. 세입자들의 전세금 반환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다 내주지 못하는 '깡통전세'도 나오고 있다.

현재 전세금 총규모는 75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김세직 교수(서울대 경제학부)와 고제헌 연구위원(주택금융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 '한국의 전세금융과 가계부채 규모'에서 제시한 수치다. 논문에 따르면 전세부채 총액이 2010∼2015년 사이에만 36%나 급증했다. 저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규제완화가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와 고 연구위원은 "위기가 목전에 닥친 상황은 아니지만 시장추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셋빚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시기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 하락기에는 전세금을 떼일 위험이 커진다. 지금이 그런 경우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은 각각 4만가구에 이른다. 이는 2008년(5만6000여가구)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다. 강남권 입주물량도 올해 1만6000여가구로 과거 3년간(2015~2017년) 연평균 물량(7800가구)의 2배가 넘는다. 입주물량이 많으면 전셋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전셋값 동반하락이 상당기간 지속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동반하락세가 장기화하면 역전세와 깡통전세가 확산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그런 부작용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 금융당국이 가격급락 지역을 중심으로 조만간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그 결과를 토대로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등의 대책을 검토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