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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보르도 내준 영국, 지독한 와인사랑이 찾아낸 포트

(2)전쟁과 와인 포트와인과 코냑
백년전쟁에서 보르도 차지한 프랑스, 와인수출 금지하자 다른 와인 공수에 나선 영국..보르도 닮은 입지 포르투 찾아
항해 중 과발효 되지 않도록 77도짜리 독한 브랜디 섞어
알코올 20%안팎으로 높지만 당분 분해 안돼 단맛 강한편

[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보르도 내준 영국, 지독한 와인사랑이 찾아낸 포트
포르투갈 북부 항구도시 포르투 지역은 일조량,강수량 등 기후조건이 프랑스의 보르도와 비슷해 포트와인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포르투갈 포르투항의 아름다운 모습.

"어? 이런···,와인 맛이 왜 이래. 시큼떨떨한게 식초같잖아."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승리하며 보르도 와인을 되찾은 프랑스가 와인 수출을 금지하자 보르도 와인에 목말랐던 영국 귀족들이 보르도를 대체한 포르투갈 와인을 입에 넣자 마자 헛구역질을 하며 뱉어낸 말입니다. 보르도 대신 포르투갈산 와인이 도착한다는 소식에 성찬을 차려놓고 입맛을 다시던 귀족들이 이 이상한(?) 와인을 접하며 지은 표정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바로 '포트 와인'에 대한 얘기입니다. 백년전쟁 후 영국인들은 더 이상 보르도 와인을 즐길 수 없게됐습니다. 프랑스가 얄미운 영국에 자국산 와인 수출을 금지했기 때문이죠. 옛날부터 보르도 와인을 너무 사랑했던 영국인들은 더 이상 와인을 마실수 없게 되자 프랑스를 대체할 곳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북부의 항구도시인 포트(포르투)를 보고 환호합니다. 너른 땅과 일조량, 강수량까지 기후조건이 보르도를 닮아 포도를 재배하기에 더없이 좋은 데다 대서양에 접한 항구도시여서 와인을 영국으로 들여오기 최적의 입지라고 생각해서죠.

이렇게 찾아낸 천혜의 땅에서 정성껏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영국으로 가져왔는데 항해 거리가 너무 멀어 그만 배 안에서 와인이 모두 상해버린 것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밀폐력이 좋은 코르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고 유리병도 없었습니다. 그냥 오크통에 담아 촛농이나 올리브유 등을 위에 얹어 공기의 접촉을 막았지만 이곳으로 와인 변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와인을 상하지 않고 운반할 수 있을까." 영국인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와인에 독한 브랜디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영국인들은 포도를 으깨 와인을 발효시키는 도중에 77도짜리 브랜디를 쏟아부어 독한 와인을 만들게 됩니다. 브랜디를 일종의 방부제 역할로 사용한거죠. 이렇게해서 포트 와인이 탄생했습니다. 영국인들의 와인사랑이 탄생시킨 것이 바로 포트와인인 셈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알코올 도수 20도 안팎의 와인을 '주정강화 와인'이라고 합니다. 이후 스페인에서도 '셰리'라고 불리는 주정강화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포트 와인은 일반 와인에 비해 단맛이 아주 강합니다. 와인은 포도의 당분이 효모와 만나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기 전에 브랜디가 들어오면서 효모가 죽어 당분이 분해되지 않고 와인속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포트에서는 지금도 당시와 똑같이 도루강 상류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이를 포트항 근처로 가져와서 브랜디를 넣고 숙성시킵니다.

[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보르도 내준 영국, 지독한 와인사랑이 찾아낸 포트
코냑의 한 종류인 알마냑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은 포트 와인에 앞서 우리가 즐기는 향기로운 코냑 탄생의 배경이됐습니다. 백년전쟁이 시작되기 전 영국이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을 소유하고 있을때 얘기입니다. 보르도 지역을 흐르며 대서양과 연결되는 지롱드강 주변에는 질좋은 포도가 많이 나왔습니다. 보르도의 와인도 좋았지만 보르도에서 100㎞ 위쪽에 위치한 코냑 지방과 아랫쪽 알마냑 지방도 보르도 못지않은 와인 명산지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지인 보르도 지방의 와인을 관세없이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데 굳이 관세까지 물어가며 코냑과 알마냑 지방의 와인을 찾을 이유가 없었겠죠. 영국인들의 외면으로 보르도 못지 않은 품질의 코냑과 알마냑지역 와인이 계속 재고로 남게 됐습니다. 와인은 계속 쌓이고 보관할 방법은 없어 고민하던 농부들이 그 해법으로 와인을 증류해봤는 데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이렇게해서 코냑이 탄생했습니다. 코냑 지방에서 증류한 술이 인기를 얻자 보르도의 아랫쪽 지방인 알마냑에서도 와인을 증류하면서 코냑은 확산됩니다. 코냑은 알코올 도수 40~43도의 고도주로 고유의 맛을 가지면서도 상하지 않으니 보관에도 제격입니다.
원래 증류 직후에는 무색이지만 떡갈나무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치면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옅은 갈색을 띠게 됩니다. 전쟁은 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가져다 주는 가장 잔인한 행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와 먹거리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다음편은 '전쟁의 눈물로 빚은 와인 보졸레 누보'가 얘기가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