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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겉핥기에 그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업종·규모별로 차등화 해야
국회 논의 과정서 보완하길

정부가 2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결정기준 가운데 재계가 요구한 기업 지불능력 항목은 제외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했다. 당시 초안은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기업의 지불능력을 포함한 7개 항목을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제시했다. 근로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함과 동시에 기업의 지불능력 범위 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은 것으로 이해된다. 어느 한쪽의 희생이 아니라 노사 모두의 공존과 상생이 출발점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최종안은 개악이 됐다. 기업 지불능력을 뺀 것은 정부가 선언한 최저임금 기본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불능력을 넘어서는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기업과의 공존을 부정하는 것이다. 기업은 망하거나 말거나 임금만 올리면 된다는 발상이어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정부는 노사의 균형추를 또 한번 허물었다. 이러니 친노동·반기업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니겠나.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월 소상공인 2750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제도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69.7%가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를 요구했다. 사업장 규모별 차등화를 요구한 응답도 25.5%나 됐다. 이들 대부분은 문재인정부 들어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불황으로 매출이 줄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2년간 거의 30%나 올랐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이 업종별, 규모별 차등화를 요구하는 것은 최저임금을 감당하는 능력이 업종이나 사업장 규모에 따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소규모인 데다 수익성이 낮은 음식·숙박업과 첨단 고소득 업종의 임금 지급능력이 같을 수는 없다. 능력에 맞게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이들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음식·숙박업종 취업자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지급능력 차이를 무시하고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올린 영향이 컸다.

정부는 영세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며 최저임금 개편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발표한 최종안에는 소상공인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럴 거라면 최저임금 개편을 왜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는 국회 심의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최저임금의 업종·규모별 차등화를 실현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