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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재수사" 목소리 높지만…성과까지 '가시밭길'

"김학의 재수사" 목소리 높지만…성과까지 '가시밭길'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 전경. /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무혐의' 뒤집을 증거 나와야…동영상은 '특수강간' 입증 한계
부실수사·외압 의혹도 수사대상…정치권, 황교안 등 의혹 제기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에 관해 사실상 재수사 지침을 내렸지만 재수사를 통해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김 전 차관 사건과 함께 장자연·버닝썬 사건을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고의적 부실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항이 보인다는 것"이라며 "검찰과 경찰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검찰과 경찰이 각각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고 도려내도록 하는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다.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경 어느 한쪽의 성과가 미진할 경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특히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맡게 될 검찰의 재수사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전망이다.

21일 검찰에 따르면 법무부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진상규명 작업과 동시에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신속하게 수사로 전환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대검 진상조사단이 과거 검찰에서 두차례 무혐의 처분했던 김 전 차관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증거나 범죄 혐의점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강제수사권이 없어 압수수색을 통한 새로운 증거 확보는 물론 관련자 소환조사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진상규명'의 최종 책임은 수사기관인 검찰이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별검사나 특임검사가 수사를 맡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나 특검이 사건을 맡게 된다면 우선 재수사 대상으로 꼽히는 것은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 유무이다.

경찰은 2013년 7월 특수강간 혐의로 김 전 차관을 검찰에 송치했다. 특수강간죄는 2007년 12월21일을 기점으로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됐기 때문에 이후 범죄에 대해선 수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검찰에서 2013년과 2015년 두차례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만큼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나 범죄 혐의가 새롭게 나와야 한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언급해 화제가 되고 있는 동영상의 경우 등장인물이 김 전 차관인지 여부와 관계 없이 특수강간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는 부족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특수강간죄란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지닌 채 또는 2명 이상이 합동해 강간죄를 범한 경우를 말하는 데 알려진 동영상 내용만으로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과 함께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고위 인사들, 이른바 '윤중천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조사도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윤중천 리스트에는 정·재계, 법조계, 의료계, 군장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져 있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수사가 성과를 낼 경우 '권력형 비리'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사단은 당시 부당한 청탁과 함께 향응 제공이 이뤄졌는지 여부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2013년 검경 수사단계에서는 권력형 비리에 관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

검경 수사 단계에서 부실수사나 외압은 없었는지 여부에 관해서도 수사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은 2013년 6월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차관 체포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은 "범죄 혐의의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기각하는 등 각종 영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두차례 검찰 조사에서도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차관 수사에 윗선의 부당한 압력이 확인된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한 처벌이 가능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차관 무혐의 처분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같은당 의원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주요 사건 수사는 대검과 법무부를 거쳐 청와대까지 보고되는 게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당시 법무부 장관이나 민정수석 등 최고 윗선에서 사건 처리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