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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투기자본을 부끄럽게 만든 현대車 주주들

현대자동차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표 대결이 현대차의 완승으로 끝났다. 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제안한 고배당 요구와 사외이사 선임안은 20%를 밑도는 지지를 얻으며 모두 부결됐다.

현대차 당기순익의 2~3배가 넘는 수준의 고배당 제안은 겨우 13.6%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현대차 이사회가 내놓은 배당안은 86%의 압도적 찬성표를 얻었다. 주주들은 엘리엇의 고배당 요구가 현대차의 미래경쟁력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이날 주주총회에 참석한 한 주주는 엘리엇의 제안은 '독이 든 성배'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주총이 열리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대규모 일회성 배당금을 지급하라는 엘리엇의 요구는 빠르게 진화하는 자동차산업 특성과 장기투자계획 등을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라며 주주들에게 반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현대차 지분 8.7%를 보유하고 있는 제2대 주주 국민연금도 엘리엇의 배당요구는 '과다한 수준'이라며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또 사측과 늘 갈등하던 현대차 노조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엘리엇의 행태는 헤지펀드 특유의 '먹튀' 속성을 드러낸 것으로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는 요구"라고 비판했다.

엘리엇의 이사회 진입 시도도 무산됐다. 엘리엇은 현대차 이사회가 추천한 인사들에 반대하며 로버트 랜들 매큐언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 등 3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16~19%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엘리엇은 현대차 사외이사진에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진입시켜 경영에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단 한 명의 사외이사도 배출하지 못했다.
40%가 넘는 외국인 주주들도 엘리엇의 제안을 외면한 셈이다.

엘리엇의 완패로 끝난 이번 주총은 결국 투기자본의 요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주주들은 기업가치를 훼손해서라도 수익을 챙기려는 투기자본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와 비전에 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