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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1억원 이상 빚지고 시작하는 신혼살림

지난 2014~2018년 사이에 결혼한 신혼부부의 절반이 결혼하기 위해 빚을 졌다. 특히 1억원 이상 빚을 진 사람도 전체의 37.7%나 됐다.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24일 발표한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내용이다.

청년세대는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등골이 휜다. 월급에 비해 턱없이 비싼 주거비용 때문이다. 신혼집을 사는 것은 금수저가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다. 전셋집 마련도 자력으로는 벅차다. 서울 등 수도권에선 소형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수억원의 목돈이 있어야 한다. 결국 월세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싼 집이라도 월세 부담이 월급의 20~30%나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은 청년세대의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보사연의 조사(2018년 기준)에 따르면 '결혼할 생각이 있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미혼남성은 58.8%, 미혼여성은 45.3%에 불과했다. 그 결과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0명대(0.98명)로 낮아졌다. 청년세대의 결혼 기피는 저출산과 노동력 부족을 초래해 우리 경제의 존립과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청년세대가 결혼을 기피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신혼집 마련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저렴한 공공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목적으로 도입된 행복주택 사업은 전국 대도시 곳곳에서 벽에 부닥치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고 주거환경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임대주택 건립을 막고 있는 인근 지역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교통이나 생활편의시설과 동떨어져 빈집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막대한 빚을 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결혼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현실을 방치해선 안된다.
정부는 임대주택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연구원에 따르면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