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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성락원(城樂園)

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성락원(城樂園)은 전남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정원과 함께 흔히 '한국 3대 정원'으로 꼽힌다. 하지만 길상사 인근에 있는 성락원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개인 소유인 성락원은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의 정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여년간 일반인의 범접을 허락하지 않았던 성락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성락원은 23일부터 6월 11일까지 50일간 한시적으로 문을 연 뒤 내년 가을부터 완전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락원 개방 소식을 전해 들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베일에 싸여 있던 옛 정원이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큰 선물과도 같은 사건"이라고 했다.

성북동 선잠로2길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검은색 벽돌담이 둘러쳐져 있는 성락원을 만나게 된다. 총면적이 1만4407㎡(약 4360평)나 되기 때문에 성락원을 두르고 있는 담은 제법 길다. 입구로 사용되는 검은 철제대문 옆 벽면에 '성락원'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안에 오래된 정원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다.

18세기 말 지어져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별궁으로도 쓰였던 성락원은 앞뜰, 안뜰, 바깥뜰 등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쌍류동천(雙流洞天)이 앞뜰과 안뜰을 나누고, 후원 격인 바깥뜰엔 정자각 형태의 11칸짜리 건물 송석정(松石亭)이 있다. 정원 안에는 크고 작은 연못 3개가 있는데, 영벽지(影碧池) 서쪽 암벽에 행서체로 '장빙가(檣氷家·고드름 매달린 집)'라고 쓴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경(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본래의 자연을 마음으로 가져와 즐기는 차경을 정원 꾸미기의 제1 원칙으로 삼았다. 오래된 정원일수록 자연을 그대로 두는 순응의 원리와 태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다. 무르익어가는 봄밤, 옛 정원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