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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일자리 잃은 제주 녹지병원 근로자 50명

"고래 싸움에 직원만 피해"
말만 요란한 '일자리정부'

제주 녹지국제병원 근로자 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녹지병원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의 구샤팡 대표는 지난주 직원들에게 보낸 통지서에서 "병원사업을 부득이하게 접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근로자 대표를 선임하면 성실하게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해고 통보나 다름 없다.

중국계 자본이 투입된 녹지병원은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내국인 진료 여부를 놓고 제주도와 마찰을 빚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7일 조건부 개설 허가 자체를 취소했다. 그에 앞서 녹지병원은 조건부 허가를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녹지병원의 한 직원은 "결국 근로자들은 고래 싸움에 직장을 잃게 돼버린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일자리 50개는 간단한 숫자가 아니다. 각 해당자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다. 한때 녹지병원엔 100명이 넘는 직원이 있었다. 사업 진척이 더디자 의사 등 전문직은 벌써 떠났다. 지금은 간호사·행정직 등 50여명만 남았다. 투자개방형 병원, 곧 영리병원은 정부 정책에서 출발했다. 제주도는 1순위 시범지역으로 꼽혔다. 녹지병원은 제주헬스케어타운 안에 있다. 정부를 믿고 녹지병원에 취직한 이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봄 취임하자마자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세웠다. 하지만 그 뒤 행보를 보면 딴 판이다.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에 주력했다는 인상을 준다. 최저임금 정책이 대표적이다. 임금이 뛰자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줄었다. 그 결과는 다달이 발표되는 고용통계에 고스란히 잡힌다.

신규 일자리 창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의료·관광 등 서비스업에 좋은 일자리가 많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규제를 풀지 못한다. 7년째 국회에 발이 묶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보라.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는 영리병원에 의료 민영화라는 낙인을 찍은 뒤 스스로 좋은 일자리를 걷어차고 있다. 적어도 현 정부에선 영리병원 이야기가 다신 나오지 않을 게 틀림없다. 녹지병원 근로자 50여명은 어설픈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다.


일자리정부라면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당과 정부는 공직선거법·공수처법에 앞서 서비스기본법부터 패스트트랙에 태워야 한다. 그래야 고용한파와 마이너스 성장률을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