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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원인조차 모르는 ESS 화재, 기업들만 죽을 맛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잇단 화재로 관련 업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ESS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로,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1년 새 20여건에 달하는 화재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구성, 관련 조사를 해왔지만 아직도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관련 업계는 당장 눈덩이처럼 커지는 피해와 실적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ESS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SDI와 LG화학은 이번 사태로 올 1·4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각각 52.2%, 57.7% 줄어드는 어닝쇼크에 직면했다. 지난해부터 ESS 관련 투자를 늘려온 LS산전과 효성중공업도 신규 수주가 급감하면서 관련 사업이 올스톱됐다. 더 큰 문제는 중소·중견업체다. ESS 설치작업 등을 맡아온 이들 업체는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린 상태다.

이번 사태가 자칫 글로벌 ESS시장에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정부는 염두에 둬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내 ESS시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등과 맞물리면서 빠르게 성장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정부와 업계의 세계시장 확대의 꿈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대략 세 가지다. 우선 신속하게 화재 원인을 밝혀내 업계에 팽배해 있는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정부는 벌써 두 차례나 조사 결과 발표를 미뤄왔다.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이와 함께 전국 1490여곳에 설치돼 있는 ESS의 안전대책과 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