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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예산 더 쓰려면 재정준칙부터 세우길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다. 문 대통령은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소모성 지출이 아니라 경제·사회 구조개선을 위한 선투자"라고 옹호했다.

사실 문 대통령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 1월 문 대통령을 만나 "우리 공무원들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재정 확장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는 한국 정부의 재정 정책을 '자린고비 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긴축의 보루인 국제통화기금(IMF)조차 확대 재정을 권한다.

물론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6일 "단기 경기부양을 목표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장기간 반복적으로 시행하면 중장기적으로 재정에 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유승민 의원(바른미래당)은 17일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의 세금살포 선언은 이 정권의 경제정책이 결국 세금 쓰는 것뿐이라는 고백"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는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한국은 신뢰가 무너진 사회다. 자연 공동체 의식도 희박하다.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은 정부밖에 없다. 다행히 나랏빚은 아직 적은 편이다. 201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7.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4.9%)을 한참 밑돈다.

다만 그 전에 정부가 할 일이 있다. 먼저 깐깐한 재정준칙을 세워야 한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86조)고 두루뭉술 언급하고 끝이다.
이 규정을 좀 더 엄격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을 넣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뒤라야 재정 지출 확대가 정당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