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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반EU·녹색’ 유럽 정치지형 흔들었다… 기성정당 몰락

유럽의회 선거 결과 '파장'
중도우익·좌파 과반의석 실패
브렉시트·이탈리아동맹·RN 등 뭉치면 2위 세력으로 부상할듯
佛 르펜·伊 강경 反이민파 승리 ..환경문제 관심 늘며 녹색당 약진

‘극우·반EU·녹색’ 유럽 정치지형 흔들었다… 기성정당 몰락
기자회견하는 르펜… 프랑스, 극우정당 RN 1위 유럽연합(EU) 입법부인 유럽의회 총선이 끝난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극우 계열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N은 이날 출구조사 결과 프랑스 정당 가운데 득표율 1위를 기록할 전망이며 의회 내 극우 정치 그룹의 점유율은 전체 약 4분의 1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연합뉴스

‘극우·반EU·녹색’ 유럽 정치지형 흔들었다… 기성정당 몰락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 사민당을 비롯한 기성정당들이 몰락했다. 중도우파가 여전히 최대 세력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5년전에 비해 세가 급격히 위축됐다. 반면 기성정당들을 대신해 신생 자유주의 정당들, 녹색당과 극우 정당들이 약진했다. 특히 이번 유럽의회 선거뒤 통합방안을 추진해 왔던 극우는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등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통합이 현실화할 경우 유럽의회 2위 세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도의 몰락···지도부 혼란 불가피

26일(현지시간) 폴리티코,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23~26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기성정당 몰락, 녹색정당·극우 부상으로 요약된다. 유럽연합(EU) 각국 기민당 등이 중심이 된 중도우익 유럽국민당(EPP)은 이번 선거에서도 1위 자리를 지키기는 했다. 그러나 의석수가 급감해 현재의 216석에서 178석으로 줄어들게 됐다. 중도좌파인 사회민주진보동맹(S&D) 역시 138석으로 2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 49석이 날아갔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전진하는 공화국(앙마르슈)'과 마르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가 이끄는 신생 중도자유연합인 '유럽자유민주동맹(ALDE)+앙마르슈'는 104석을 확보해 3위 자리로 껑충 뛰어오를 전망이다.

의석수 기준 4위는 66석을 차지한 녹색당이었다. 기후협약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등의 환경정책 입안을 앞두고 녹색당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극우와 반EU 정당들 역시 세를 크게 불렸다. 서로 이질적이어서 통합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반이민 등을 내걸고 유권자들을 사로잡는데는 성공했다. 영국의 브렉시트당이 116석 이상을 확보하고, 이탈리아 동맹(LEAGUE), 프랑스 국민연합(RN) 등이 득표율을 높여 이들이 한데로 뭉칠 경우 EPP에 이어 2위 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열었다. 그러나 이들 정당은 워낙에 이질적이어서 최소 2개 이상의 그룹으로 나뉠 가능성이 높다고 폴리티코는 전망했다.

EPP, S&D 등 친 EU 성향 정당들이 여전히 유럽의회 절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극우 등에 힘을 빼앗긴데다 친 EU 내부의 세력판도에도 변화가 있어 EU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구성이 혼란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EPP가 여전히 178석으로 최대 정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나머지 친 EU 정당들인 사회당, 자유당, 녹색당 계열 정당들의 의석수는 EPP를 크게 웃도는 317석에 이를 전망이다. 게다가 사회당, 녹색당 등은 EU 기구에서 보수주의자들의 독점을 끊겠다고 다짐해왔던 터라 유럽 지도부 구성에 혼란이 뒤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자 유명한 자유주의자인 마가렛 베스타거 위원은 "나는 독점을 깨기 위해 일해왔고, 지난 5년간 한 일이 그 것이며, 이는 또한 오늘 유권자들이 취한 행동이기도 하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극우 돌풍···정치 지형 대변동

전세계에서 인도에 이어 2번째로 큰 의회인 유럽의회의 올해 선거 투표율은 20여년만에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EU 지도부에 희소식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EU, 극우가 부상하면서 근심거리를 안겨줬다. 유럽이 앞으로 최소 5년은 반이민, 반EU 등을 내세우고 있는 극우에 맞서 싸워야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극우 정당들은 751석 가운데 172석을 확보해 전체 의석의 25%에 육박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유럽 2위, 3위 경제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극우의 부상은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번갈아가며 집권했던 전통의 기성정당 국민당과 사회당은 지지세력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앙마르슈로 이동하면서 몰락했다. 국민당은 20석 가운데 13석을 잃었고, 사회당도 의석수가 13석에서 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마크롱의 앙마르슈도 극우 마린 르펜의 RN에 밀릴 전망이다. RN은 22석을 얻어 21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앙마르슈을 앞지르게 됐다.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에 패하며 당명까지 국민전선(FN)에서 RN으로 바꾼 르펜이 상징적인 승리를 거머쥔 셈이다. 르펜은 RN의 의석수가 23석에서 22석으로 줄어들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앙마르슈를 앞질렀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또 별 근거도 없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국회를 해산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강경 반이민 극우 정당 동맹도 32% 득표율로 이번 선거에서 극우 정당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민당과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바바리아주의 기사당은 1위를 지키기는 했지만 의석수가 5석 줄어 34석에서 29석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은 그야말로 몰락해 메르켈 총리의 연정붕괴를 앞당길 것이란 우려를 높이고 있다.
사민당은 득표율이 27.3%에서 15.5%로 급락했고, 26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2차 대전 이후 강력히 장악해왔던 브레멘주에서 패배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반면 녹색당은 의석수가 13석에서 22석으로 뛰고, 극우 독일대안당(AfD)도 1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페인, 네덜란드, 몰타, 덴마크 등에선 사회당이 승기를 잡았지만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극우의 승리를 상쇄할 만큼의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