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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가핵심기술 방화벽을 높여야 한다

한국형 원전기술도 유출돼
사후처벌보다 예방이 중요

한국수력원자력 퇴직자가 한국형 원전 핵심기술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미국으로 유출시킨 혐의로 국정원 등에서 수사받고 있다. 유출된 기술은 한수원 등이 개발한 경수로(APR-1400)의 설계관련 기술이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유출 혐의자는 2015년 한수원을 퇴직한 이후 UAE 바라카 원전 운영사(나와)에 재취업한 인물이다. 원전 정상가동 여부를 감시하는 프로그램 '냅스(NAPS)'도 함께 유출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국형 원전관련 기술은 한국전력기술(KOPEC)이 20여년에 걸쳐 독자개발한 핵심기술이다. 국가예산 1000억~2000억원과 최첨단 연구인력이 대거 투입됐다. 설계관련 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성 검증을 통과해 다음달 말쯤 최종 설계인증을 받을 예정이다. 이 기술이 해외로 넘어가면 한국형 원전의 건설·운영·정비에 대한 우리의 기술독점권이 위태로워진다. 특히 UAE가 곧 발주할 예정인 바라카 원전의 운영권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은 원전분야만이 아니다. 그동안 반도체·가전·자동차 분야는 물론이고 정보통신과 방위산업 등의 분야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정부가 몇 차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없다. 이번처럼 국내 연구개발자들의 해외 재취업 과정에서 빈발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보유기업이나 연구개발자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가의 핵심자산이란 인식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핵심기술 보호체계가 허술하다. 현재 산업기술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유출행위자에 대한 처벌이나 신고포상제 등 주로 사후적 제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한번 유출되면 되돌릴 수 없다. 유출을 사전적으로 예방·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핵심기술 보유 기업과 인력 관리를 강화해 유출 자체를 막을 수 있도록 방화벽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는 기술전쟁터나 다름없다. 주요국들은 안보를 이유로 기술 방화벽을 높이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화웨이 보이콧(거래제한)'이 대표적 사례다. 이에 맞서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도 최근 '국가기술안전관리 리스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인민일보는 이에 대해 "핵심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안보법에 근거해 방화벽을 쌓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안보위협론이 타당한가를 따지기에 앞서 첨단기술을 둘러싸고 사활적 경쟁이 벌어지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첨단기술은 안보와 직결된다. 한국도 기술안보를 강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