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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네이버·구글, 평평한 운동장서 싸우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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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역차별 시정 호소
30년 된 재벌정책 손봐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18일 한 좌담회에서 "기업이 크다, 작다는 건 반드시 글로벌 스케일을 놓고 봐야 한다"며 "5조, 10조원 규모 회사가 크다고 규제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이해진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가 깊이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네이버를 재계 순위 45위 '재벌'로 올리면서 이해진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카카오(총수 김범수)는 이보다 더 높은 32위다.

이해진이 말한 5조원은 공시대상기업집단, 10조원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말한다. 공정위는 계열사 자산 총액이 5조원을 넘으면 통칭 준재벌, 10조원을 넘으면 재벌로 분류한다. 준재벌이 되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감시하는 등 본격적인 규제가 따른다. 정식 재벌이 되면 여기에 상호출자 금지, 순환출자 금지 등 더욱 강력한 규제가 추가로 얹혀진다.

그러나 외국 기업엔 이런 걸림돌이 일절 없다. 예컨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한국에서 어떤 영업을 하든 규제 밖이다. 여기서 역차별 논란이 나온다. 이해진은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제국에 끝까지 저항하겠다"면서도 그러려면 "기업과 규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반드시 글로벌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이버가 구글에 맞서 싸우려면 먼저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재벌에 순위를 매기고 총수를 지정하는 제도는 30년 넘은 낡은 관습이다. 도입할 땐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고 총수의 전횡을 막는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은 전 세계 기업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스마트폰 위에서 치열하게 싸운다. 네이버는 막고, 구글은 풀어주는 게 당최 말이 안 된다.

지난해 공정위는 "38년 된 낡은 공정거래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며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이 그렇다. 찔끔찔끔 고치는 바람에 공정거래법은 누더기가 됐다. 시대 변화를 반영해 뜯어고칠 때가 됐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재벌 순위를 매기는 시대착오적 관행도 이참에 바꾸면 좋겠다. 미국에선 격주간지 '포천'이 기업 순위를 매긴다. 한국에선 정부가 그 일을 가로챈 격이다.


재벌 총수를 지정하는 원칙도 오락가락한다. 포스코는 ㈜포스코, 외국계 한국지엠은 한국지엠㈜이 총수다. 그렇다면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하는 네이버는 왜 네이버㈜가 안 되나. 총수의 황제경영을 비난하면서 꼭 특정인에게 총수라는 올가미를 씌워야 하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