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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계기업 방치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이자도 못 갚는 기업 32%
636조 자영업 빚도 부담

애써 돈을 벌어봤자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이 지난해 32%를 넘어섰다.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자보상배율이 3년 넘게 1을 밑도는 한계기업은 14.1%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0.4%포인트 높아졌다. 20일 한국은행은 이런 내용을 담은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했다. 한은은 기업 2만1213개를 조사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이 조만간 살아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중 통상마찰은 벼랑끝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한은도 이게 걱정이었는지, 나쁜 시나리오를 돌려봤다. 기업 매출이 작년보다 평균 3% 준다는 가정 아래서다. 그랬더니 지난해 평균 5.9이던 이자보상배율이 5.1로 더 낮아질 걸로 예측됐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비중은 37.5%로 껑충 뛴다.

한계기업은 흔히 좀비기업으로 부른다. 퇴출이 정상이지만 계속 살아남아 자원배분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한계기업 정리는 해묵은 과제다. 20여년 전 외환위기가 터진 뒤 1차 부실기업 정비가 이뤄졌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 시장에서 한계기업을 정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정치권이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기업 부실이 고스란히 쌓였다. 금융안정보고서에 실린 수치가 그 증거다.

보고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내용은 자영업자 부채다. 한은은 3월 말 자영업자 빚을 636조원으로 집계했다. 1년 전에 비해 11% 넘게 늘었다. 자영업자 빚은 그동안 천문학적인 가계부채(1540조원·3월 말)의 그늘에 가렸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고초를 고려할 때 636조원은 가볍게 볼 숫자가 아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3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을 406조원으로 집계했다. 한은 숫자와 230조원 차이가 난다. 이는 한은이 자영업자의 개인사업자 대출과 순수 가계대출을 합쳐서 자영업자 부채로 잡기 때문이다. 결국 빚을 낸 주체는 한 사람이다.
자영업자 부채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은 통계가 더 적절해 보인다.

기업이든 자영업자든 빚이 쌓이면 언젠가 터지게 돼 있다. 빚이 문제를 일으키면 금융시스템도 흔들린다. 케네스 로고프 교수(하버드대)는 "국가든 개인이든 은행이든 과도한 외부자본 유입은 곧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이번엔 다르다'·2009년).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늘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