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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하지 않고 재난에 대응 못해… 재난안전전문가 육성 최선"

30년간 재난업무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재난관리전문인력 양성 사업 추진..10여개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 지원..방재기사 자격증·방재안전수당 신설
내년 안전대진단 평가결과 공개..시·군·구 기초자치단체로 확대..인사상 인센티브체계 마련 '우대'

"대비하지 않고 재난에 대응 못해… 재난안전전문가 육성 최선"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지난 18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심리지원, 피해지역 상권 활성화 등 재난 관리 영역이 종합적인 판단과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분야로 확대되고 있어 관련 전문가 육성이 시급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재난 대응은 재난업무의 꽃이다." 김계조 행정안전부 신임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의 첫 일성이다. 평소 소신이자 30년 넘게 체득한 그의 재난철학의 한 단면이다. 재난이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일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일까. 곧바로 이어지는 대답에 바로 의문이 풀렸다. "꽃을 피우기 위해 양질의 토양과 적당한 햇빛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재난 대응을 잘하려면 평소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 5월 24일 취임후 그가 이런 화두를 던진 배경도 대응 못지 않게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는 1989년 기술고시(22회)에 합격해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간 줄곧 재난업무만을 담당해왔다. 소방방재청 재난관리국장,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 대통령비서실 재난안전비서관 등 재난안전업무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재난안전법 등 현재 재난관련 법안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청년 김계조 토목사무관이 팀·과장과 국·실장을 거쳐 본부장이 된 과정은 국가 재난대응 체계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김 본부장 취임 이후 재난본부 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재난본부 업무를 꿰뚫고 있는 김 본부장에게 올리는 보고를 대충 준비했다가는 곧바로 날카로운 질문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본부 직원들은 "내부승진이어서 조직의 사기가 오른 점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제대로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이를 반기고 있다.

평생 재난분야에 몸담아온 만큼 김 본부장은 재난업무 담당자의 고충과 설움을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다. 현재 전국 600여명의 방재안전직 공무원이 재난업무 최전선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행안부는 이들의 사기를 높이고 더 나은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당 신설에 나섰다. 내년부터 방재안전기사 자격증을 도입한다. 지역별 안전지수 등급도 공개해 안전에 관한 이슈를 공론화할 방침이다.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계조 본부장은 30년 재난업무의 공력을 바탕으로 현재 재난안전관리 시스템, 재난안전 전문가 양성의 성취와 한계, 그 한계를 극복할 대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대담=김태경 정책사회부장

―취임한지 이제 한 달 정도 됐다

▲지난 30년간 전체 공직생활을 재난안전 분야에서 근무해왔다.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기대가 특히 높아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과거와 달리 생활화학제품, 기반시설 안전, 지반침하, 미세먼지 등 국민의 생활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그만큼 많아졌다.

분야별 주관기관과 협력을 활성화하고 재난안전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무시 관행을 근절하고 건전한 안전문화와 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정부 내 재난안전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태풍, 홍수 등 자연재난은 토목직이 주로 담당해왔지만 앞서 설명했듯 사회가 복잡해지고 노후화 되면서 사회적 재난의 유형도 복잡하고 대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방재학문이 점차 종합학문으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본다.

재난담당 공무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방재안전직을 육성하고 있다. 현재 600여명으로 아직 적은 수준이지만 매년 꾸준히 채용을 늘리고 있다. 재난관리 분야라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해 공직에 들어온 만큼 핵심인력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힘든 업무를 맡은 터라 고충이 많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방재안전 수당을 신설했다. 지속적으로 방재안전직 분들의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대학과 손잡고 재난 전문가 양성과정도 만들었다. 방재학을 종합적으로 가르쳐주는 학과가 없다. 실제 업무를 하면서 배우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2014년부터 재난관리전문인력 양성 사업을 추진해 10여개 대학에 30여억원을 투입해 석·박사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방재기사 자격증도 신설된다. 올 하반기 필기시험을 시작으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누군가는 씨앗을 뿌려야한다. 배출된 인재들이 나중에 재난안전 분야의 주축이 돼서 재난안전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진흥기관의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은

▲안전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산업진흥을 담당하는 정부부처 산하에 있어 안전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 과제다. 선수와 심판이 한 팀에 있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가 대표적이다.

산업 진흥에 안전이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으로 인해 충분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이다. 실제 산업진흥을 주된 업무로 하는 기관의 소관 시설물에서 재난,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상황 공유나 초동 대응이 미흡한 사례가 많다. 선수와 심판을 분리한 사례도 있다. 승강기안전관리공단이 대표적인데. 2009년 승강기안전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당시 지식경제부에서 행안부로 주무부처가 변경됐다. 산업 진흥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당장 조직을 개편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논의할 부분이다. 우선 산업진흥과 안전관리 모두를 담당하는 개별 부처에서 안전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적극 나설 계획이다. 정부 예산안 편성 전에 행안부가 재난안전사업을 검토하는 사전협의 제도도 실시해 각 부처에 재난안전 분야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적극적인 안전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대비하지 않고 재난에 대응 못해… 재난안전전문가 육성 최선"
■약력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1964년 창원 △기술고시 22회 △경남 마산고 △연세대 토목공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교통공학과 석사 △소방방재청  재난관리국장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 △대통령비서실 재난안전비서관 △행안부 재난관리실장

―자치단체의 협조는 어떤가.

▲자치단체 공무원들과 단체장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편이다. 현재 일선 시·군·구 단위 까지 팀·과 등 재난관리 조직이 구성돼 있다.

통합지원본부가 대표적인 예다. 재난이 발생하면 기본적으로 시·군·구청에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지대본)이 구성되고 현장에서는 인명구조, 화재진압을 위해 소방이 현장지휘본부를 만든다. 재난발생 초반에는 소방 업무가 대부분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재민 구호, 현장 복구 등 자치단체의 업무 비중이 급격히 올라간다.

소방의 역할이 끝나면 부단체장을 중심으로 현장에 통합지원본부가 마련되고 지대본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현장 대응에 나선다.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지대본에 보고하고 즉각 조치하는 프로세스다. 서울 상도동 유치원 붕괴사고, 종로 고시원 화재 때도 통합지원본부가 제 역할을 했다.

본래도 부단체장이 몇몇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가서 현장 상황을 파악해왔지만 매뉴얼이 없다보니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통합지원본부 매뉴얼을 만들고 조직도 명확하게 편성한 후 반복적으로 훈련을 진행했고 이제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재난안전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재난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재난업무의 '꽃'이라고 말하지만 대응을 잘하기 위해선 평소에 대비가 잘 돼 있어야 한다.

특히 중앙부처는 전국 재난을 모두 총괄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재난관련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각 지역으로 봤을 때는 5년 혹은 10년에 한 번 재난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평소에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닥친 재난에 대응할 수는 없다. 평시 업무에 계속 관심을 갖고 훈련과 교육을 꾸준히 실시해야 대응을 잘할 수 있다.

대비는 열심히 해도 잘 티가 나지 않고 성과도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단체장들이 재난대비에 관심이 떨어지는 이유다. 평소 지역별 안전지수를 공개해서 지자체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유도하는 다른 제도들도 고민해볼 필요하가 있다.

―내년도 안전대진단 달라지는 점이 있나

▲올해 처음 시·도 광역자치단체의 안전대진단 평가 결과를 공개했는데, 내년부터는 평가 결과 공개를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로까지 확대한다. 점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지자체별 결과를 공개해서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는 취지다.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기기보다는 A, B, C, D, E 등 5등급으로 나눠 공개할 예정이다. 결과가 공개되면 자치단체 간에 자연스럽게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자치단체장이 안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될수 밖에 없다.

―행안부 내에서 재난업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중앙재난대책본부 근무나 비상근무는 업무강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명감과 헌신이 요구되는 반면 공직사회 위상은 그에 걸맞지 않아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근평, 승진, 국외훈련 등을 망라한 인사상의 인센티브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재난안전 분야에 근무하면서 우수한 성과를 거둘 경우 연공서열과 관계없이 승진할 수 있도록 하고 국외훈련 선발 시에도 타 분야에 비해 우대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적으로 취해질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대기성 근무와 상황근무도 필수요원을 중심으로 최소화하는 등 본부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 노력도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