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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 메고 떠나볼까… 골목마다 옛이야기 소곤대는 부산 산복도로

피란민 판자촌의 르네상스… 산복도로 '백패커 성지'로 떠오른다
부산역 마주보는 초량 이바구길
골목길 따라 가파른계단 오르면 19세기 아련한 정취 피어올라
꼭대기 게스트하우스 '까꼬막' 부산항 절경 일품 '이바구캠프'
밤에는 옥상 야경투어 별빛축제..빈집 넘쳐나던 곳이 관광명소로
최근 건축가·젊은 창업가 몰려..개성만점 카페들도 손님맞이

백팩 메고 떠나볼까… 골목마다 옛이야기 소곤대는 부산 산복도로
이바구 캠프에서 내려다본 야경. 부산 동구청 제공
19세기 흔적이 남아 있는 옛 건축물들과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판잣집, 가파른 계단과 복잡하게 얽힌 좁은 골목들, 근대 개항부터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품어준 정든 산동네.

부산시 동구가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조용하던 산동네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동구만의 이야기 자원과 자연경관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지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

안진모 부산 동구청 기획감사실장은 24일 "피란민 집성촌이었던 산복도로는 집 모양만 변했지 전후 피란민이 살았던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 골목골목이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했다.

부산의 근현대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동구의 발자취는 '이바구길'로 고스란히 대변된다. 이바구는 경상도 말로 이야기를 뜻한다. 부산에는 총 7개의 이바구길이 있는데, 이 중 대표 격인 초량 이바구길은 최근 '백패커(배낭여행객)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동구는 연간 1170만명이 이용하는 부산역과 140만명이 드나드는 국제여객터미널을 관문으로 하는 부산 여행의 출발점이다. 부산역 맞은편 차이나타운과 텍사스거리는 이국적인 풍경과 색다른 먹거리를 앞세워 글로벌 문화거리로 재탄생했다. 여기에 최근 들어 기존 노후된 소규모 숙박업소를 백패커 체류 편의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단장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지하철 1호선 부산역 7번출구에 인접한 남선창고터와 옛 백제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89㎞ 길이의 초량 이바구길 곳곳에서는 지역사회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동구는 이바구길을 따라 들어선 음식점이나 카페 등의 시설 운영을 주민들에게 직접 맡기면서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모노레일이 설치된 168계단 꼭대기 근처 '6·25 막걸리집'과 이바구길 끝자락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 '까꼬막'이 대표적인 경우다. 까꼬막은 경상도 사투리로 '가파른 길' 또는 '오르막 길'을 의미한다.

산복도로 일대 53실 규모로 백패커의 휴식공간이 돼주는 '이바구 캠프'에서 까꼬막에 이르는 코스는 발 아래로 산복도로의 빼어난 풍광과 부산항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하늘 전망대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동구는 산복도로 내 옥상 주차장과 구 도서관 등을 활용한 5대 옥상 야경 투어 코스를 조성해 별빛 축제의 장을 만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바구길을 중심으로 한 동구의 관광활성화 추진계획은 도심공동화와 재개발에 따른 빈집 방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내 저층의 고밀주거지 특성을 고려해 골목길을 재생관리하려는 노력과 궤를 같이한다. 현재 동구 내 파악된 빈집은 680여가구에 이르는데, 이를 지역사회 수요 및 의견 수렴을 거쳐 쌈지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마을텃밭으로 정비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 비율이 낮은 동구 특성상 현장 중심의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골목길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초량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완료하면 산복도로에서 초량천까지 이어지는 또 하나의 보행길을 조성하는 안도 검토 중이다. 동구는 초량동 하나은행부터 부산고등학교에 이르는 400m 구간의 기존 복개천을 다시 생태하천으로 되살리면서 부산역에서 초량천, 산복도로를 연계한 이바구길 전체 코스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자체의 노력에 더해 민간에서의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점도 이바구길의 전망을 밝게 한다.
일부 지역 건축가들이 동구의 옛 스토리를 녹여낸 특색 있는 공간을 연출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산복도로에 남다른 분위기의 카페 거리가 조성되는 분위기다. 동구 역시 주민협의체와 손잡고 게스트하우스 등에 대한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안 실장은 "궁극적인 목표는 지금까지 원형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한편 취지에 맞게 되살려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으로서 동구를 알리는 것"이라며 "이바구 캠프를 거점으로 민박과 펜션 등이 확산하고, 부산역 맞은편 백패커 거리가 조성되면 '전 세계 백패커의 베이스캠프'로 불리는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에 비견되는 한국의 백패커 성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