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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민노총 무서워 직무급제 못하는 文정부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이 부진하다. 경영평가 대상인 128개 공공기관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직무급제를 도입한 곳은 한국석유관리원 한 곳에 불과하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부터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2년이 넘도록 기본 매뉴얼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 반발이 두려워서다.

임금체계 개편은 공공기관 경영혁신의 핵심 과제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현행 호봉제는 불합리하다. 직무 내용과 책임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직무급제로 바꿔야 한다. 이는 문재인정부 공공기관 정규직화 공약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호봉제를 그냥 둔 채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의 임금이 매년 가파르게 올라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직무급제 도입을 거부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노동계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은 호봉제와는 배치된다. 호봉제는 같은 일을 해도 근속연수가 길면 임금을 더 받는다. 오히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직무급제가 도입돼야 가능하다. 직무급제는 근속연수와 관계없이 업무 성격과 난이도, 책임 정도 등 직무가치를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직무급제를 해야 정년연장도 쉬워진다. 노동계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실현하려면 호봉제를 포기하고 직무급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겠다면 '동일 노동, 동일 임금'도 주장해서는 안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말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조가 "박근혜정부의 성과연봉제보다 더 나쁜 개악"이라고 반발하자 물러섰다. 이후 정부 관련부처들은 직무급제 도입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정부의 소신 없는 자세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호봉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부합하지 않는다. 전근대적 임금체계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소신을 갖고 노동계 설득에 나서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