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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일 공멸의 경제보복 게임 멈춰야

외신 "중국만 어부지리"
감정적 확전 경계해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복이 4일 실행단계에 들어갔다. 아베 신조 총리가 공언했던 대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발동되면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일본이 이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예상되는 한·일 간 물고 물리는 '치킨게임'의 후과가 걱정스럽다. 상호 경제보복전이 확산되면 양측 기업만 멍들고, 결국엔 양국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게 뻔해서다.

국제 여론도 이런 우려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외교사안을 빌미로 경제보복에 나서자 중국의 신화통신은 '양패구상'(兩敗俱傷·양쪽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치의 유일한 승자는 중국이 될 것"으로 봤다. 일본이 한국에 타격을 주려다 '제 발등도 찍는' 꼴이 된다면서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들조차 "한국은 일본 반도체 장비업계의 큰 단골"(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며 일본 기업들에 부메랑이 될 사태를 우려했겠나.

그런데도 아베 신조 총리가 자유무역 정신에 어긋나는 자해 카드를 빼들었으니 개탄스럽다. 홍 부총리의 맞보복 불사 언급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순 있다. 보복전의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터에 정부도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다만 절제 잃은 확전은 경계할 때다. 벌써 국민 일각에서 일제 차나 옷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자는 목소리까지 새어나오고 있다. 하지만 강경 여론에 휘둘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선 지는 사태를 불러선 곤란하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대체불가능한 기술과 핵심 소재를 더 많이 가진 일본에 비해 한국이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어서다.

그렇다면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할 일은 다했다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긴다고 해도 최소 1년6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강경 일변도 대응은 현명하지 못하다.
일본의 이번 보복조치는 전 세계 정보기술(IT)업계 공급망을 교란하는 행위로 국제여론전에서도 우리가 불리하진 않다. 우리로선 양패구상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 통상 해법을 찾으면서 중장기적으로 국내 기술을 개발하며 대일 경제의존도를 낮추는 게 최선이다. 정부가 이번 갈등의 원인이 된 징용문제를 풀 막후 외교 담판에도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