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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日 보복에 금융시스템 흔들리는 일 없길

외환위기 반면교사 삼아
시나리오별 대책 세워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일본이 돈을 안 빌려줘도 얼마든지 다른 데서 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다. 최 위원장은 "일본이 국내 은행이나 기업을 상대로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을 안 해도 대처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의 판단을 신뢰한다. 다만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촘촘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나쁠 게 없다.

최 위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 우리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은 안정돼 있다"고 말했다. 맞다. 국제 신용평가사가 매긴 국가신용등급이 그 증거다. 8일 무디스는 한국의 등급을 기존 Aa2, 전망은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Aa2는 위에서 세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일본은 오히려 우리보다 두 단계 밑이다. 게다가 한국은 외환보유액도 넉넉하고, 단기외채는 언제든 갚을 수 있는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융당국에 신중한 대처를 주문한다. 8일 서울 증시는 일본의 경제보복 여파로 크게 흔들렸다. 22년 전 외환위기가 반면교사다. 당시 일본계 자금이 쑥 빠져나가면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재임 1998년 3월~1999년 5월)은 '한국의 외환위기'(2006년)에서 "일본계 은행들은 1997년 11월 거액을 한꺼번에 회수했다"며 이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비일본계 은행들의 자금회수를 촉발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본계 자금 철수가 일종의 나비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경고다. 지난 3월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 등 일본계 4대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18조원이 넘는다.

박근혜정부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이 종료된 것도 우리에겐 악재다. 한때 700억달러에 이르던 양국 통화스와프는 독도·역사 분쟁의 덫에 걸려 2015년 제로가 됐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원·엔화를 주고 받는 조건이다. 엔화는 달러에 준하는 기축통화 대우를 받는다. 원·위안화를 교환하는 한·중 통화스와프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이 방어벽마저 사라졌다.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당장은 손을 잡는 편이 슬기롭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7일 "지금이야말로 정상 간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감도 좋지만, 행여 금융이 시스템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최 위원장과 금융위에 맡겨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