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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득보다 실이 크다

노무현 "장사 원리 안 맞아"
공급 부족에 질 저하 우려

정부가 민간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할 모양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일 국회에서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지금도 민간 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요건이 까다로워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토부는 주택법 시행령을 손질해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시행령은 정부 의지만 있으면 쉽게 개정할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는 문재인정부가 아껴둔 카드다. 잇단 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다시 꿈틀대면 언제든 꺼내들 참이었다. 김현미 장관은 마침내 그때가 왔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 최근 서울 집값은 지난해 9·13 대책 등 초강력 대책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하지만 민간 아파트 분양가를 정부가 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분양가 상한제 아래선 정부가 땅값(공시지가)과 표준건축비를 더해서 분양가를 결정한다. 이렇게 하면 분양가는 뚝 떨어진다. 반면 아파트 공급이 줄고 품질은 낮아질 게 뻔하다. 민간 건설사들은 어떻게든 이문을 남기려 한다. 만약 정부가 분양가에 족쇄를 채우면 아파트 짓는 걸 아예 포기하거나 값싼 자재를 써야 한다. 일단 당첨만 되면 주변 시세만큼 가격이 뛰는 '로또아파트'가 나올 수도 있다.

민간 분양가 상한제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이는 다름아닌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난 2004년 노 대통령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이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고 반발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결국 노 대통령은 집권당과 여론에 밀려 분양가 상한제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를 거치면서 흐지부지됐다.

분양가 상한제는 부동산을 시장이 아니라 도덕의 잣대로 보는 시각에 뿌리를 둔다. 부동산에서 얻는 지대(地代)를 불로소득, 곧 악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쓰든 집값을 누르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동산 시장은 마치 두더지잡기 게임에 나오는 두더지처럼 줄기차게 고개를 쳐든다.

최저임금 정책에서 보듯 문정부는 현실보다 명분에 집착한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명분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꾸 시장 원리를 무시하려 든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는 오로지 서생적 문제의식으로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