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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일 통상마찰 강대강, 외교는 어디 갔나

기업엔 발등에 떨어진 불
사태 장기화만은 막아야

한·일 통상마찰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을 걸고 넘어졌고,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막다른 길로 가지 말라"고 일본에 경고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무역의 가치를 공유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둘이 싸워서 좋을 게 없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조속히 합리적인 외교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10일 30대 그룹 총수들을 만나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는 청와대 회동에 참석한 그룹 총수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당장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산화 비율을 높이고,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한 방울 물이 모자라 헐떡이는 붕어에게 좀 더 기다리면 강물을 끌어다주겠다고 말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총수들은 정부가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일본이 요청한 제3국 중재위 구성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대통령의 의견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회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총수들이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기업은 피해자일 뿐 이번 사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오로지 정부만이 열쇠를 쥐고 있다. 역사를 둘러싼 정치·외교 갈등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의 경제보복을 긴급 안건으로 올렸다. 국제사회에 보복의 부당함을 알리는 효과는 일부 있겠지만 이 역시 근본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은 지난달 한·일 청구권협정(1965년)에 따른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청했다. 답변 마감 시한이 오는 18일이다. 우리가 거부하면 추가 보복이 예상된다. 국내 통상전문가들 중에는 중재위 요청을 수용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이도 있다. 당장 시간을 벌 수 있는 데다 중재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두 나라 정부 모두에 일종의 출구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기업엔 최악의 시나리오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9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서로 약속과 거래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다. 지금 두 나라 정치 지도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명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