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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日, ‘백색국가 제외’해 세계경제 교란 말라

과거사는 통상전쟁 아닌 외교적 담판으로 풀어야

일본이 안보우방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 제외를 강행할 태세여서 큰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 대한 수출규제 이후 12일 첫 한·일 '양자협의'에서 이 같은 방침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수출규제 이유로 '대북제재 위반'을 거론하면서 국제기구 조사를 함께 받자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는 불응하고 있다. 아베 행정부가 한국 수출통제체제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핵심소재 북한 유출설의 진위를 가리지 않겠다는 건 자가당착이다.

전략물자 유출 의혹은 애초 일본 정부가 제기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이 과거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일본 측의 하자도 가볍지 않다. 일본 업체가 벤츠 승용차나 담배 등 유엔 결의로 금지한 사치품을 북한에 불법수출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일본이 근거 없는 전략물자 유출설을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명분으로 삼기 전에 객관적 국제기구의 조사에 응해야 할 이유다.

일본 측이 예정대로 다음달 22일께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면 1100여개 품목이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 첨단 화학·전자 제품 생산에 국가 간 분업화가 얽히고설켜 있어 대한 수출규제는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일본은 세계 시장을 교란하는 잘못된 정책을 이어갈 경우 자국의 국제 신인도는 약화되고, 중국의 경제 패권이 강화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다만 당장 우리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14일 전경련의 기업인과 통상전문가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라.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답변이 62%로, 일본의 그것(12%)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이 무역의존도가 더 큰 데다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소재와 부품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가 일본과 경제보복전을 계속할 까닭은 없다. 잘해야 상대에 중상을 입히고 스스로 치명상을 당한다면 아니함만 못하다.
더욱이 이번 사태가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과거사에서 비롯됐다면 미국 등 제3국의 중재로 푸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워싱턴을 찾았지만 별 소득이 없지 않나. 과거사 갈등은 일본 쪽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만 매달려 양국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한다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을 무역전쟁의 최전선에 세울 게 아니라 최고위급 외교 담판에 나서는 게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