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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러 군용기 침범, 한·미 공조 틈 메우란 신호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23일 오전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3시간 넘게 넘나들었다. 이 중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는 독도 영공을 두 차례나 침범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물론 일본까지 전투기를 긴급발진해 4개국 군용기가 뒤엉키는 사태가 전개됐다. 특히 우리 전투기가 러시아기에 360발 경고사격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빚어졌다. 옛 소련 때인 1983년 자국 영공을 실수로 넘은 KAL기를 격추시킨 러시아인지라 이번에 저지른 무모한 도발이 더욱 개탄스럽다.

러시아 측은 24일 "기기 오작동으로 진입한 것으로, (한국 영공을) 의도를 갖고 침범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한 주한 러시아대사관 차석 무관의 해명이다. 그러나 이 말만 믿고 마음 놓기엔 사태는 극히 위중하다. 러시아 스스로 중국과 사전에 계획한 연합훈련임을 밝히지 않았나. 이는 양국 군용기들이 KADIZ를 들락날락하는 일이 상시화할 것이란 예고다. 설상가상으로 일본도 이날 독도를 자국 영토로 강변하면서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혹여 독도 주변 영공이 주변 강국들의 무력시위 무대가 된다면 우리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해 합동훈련은 초유의 사태다. 미·중 무역전쟁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한반도 해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러시아를 끌어들이면서다. 러·중이 한·미·일 3각 공조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가 과거사와 경제 복합갈등으로 삐걱거리자 그 틈새를 파고든 셈이다. 한·미 동맹이 느슨해질 조짐을 보이자 중·러 군용기가 올 들어 이미 25차례, 13차례 KADIZ에 진입했다.


자칫 한반도가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판인데, 지금이 한·미 연합훈련 이름마저 북한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꿀 때인가. 당장 북·중·러 안보 협력구도에 상응한 한·미·일 공조 복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한·미 간 빈틈부터 메우는 게 급선무다. 여권 일각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주장은 그래서 위험하다. 미국이 GSOMIA를 북한 핵폐기를 견인하는 수단의 일부로 중시하는 터에 이를 선제적으로 파기하는 건 한·일 관계가 아닌 한·미 동맹에 금이 가게 하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