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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日 ‘백색국가 카드’ 함부로 쓰지 마라

한국내 반일 감정 치솟고 두나라 경제에 모두 손해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가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려는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아베 신조 정부가 수출 우대대상인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다음 달 2일 각의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다. 지난 4일 시작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부품 수출제한에 비할 바가 아닌 본격적 무역전쟁 선언이다. 그렇게 하면 문재인정부도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어 한·일 경제보복전이 회군이 어려운 '루비콘 강'을 건널 소지가 농후하다.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되면 우리 미래산업 분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일본 정부가 수출심사를 강화하려는 1100여개 품목 중에 수소차용 탄소섬유와 전기차 배터리, 정밀기계 등 대체 불가능한 제품을 타깃으로 고를 경우다. 이를 강행하면 이들 중간재를 수출하는 일본 제조업체들 또한 큰 손실을 입게 된다. 특히 이미 불붙은 일제 불매운동과 일본관광 포기 움직임이 더 타오를 개연성도 크다. 그 결과는 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일 뿐이다.

한·일 간에는 응어리진 과거사가 있지만, 협력해야만 하는 현실도 있다. 아베 정부가 이를 직시해야 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강행하면 당장의 정치적 입지에 보탬이 될지 모르나 길게 보면 일본도 손해다. 글로벌 분업구조와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한국이 경제·안보적 타격을 받으면 일본에도 부메랑이 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등 일본 지식인 75명이 수출규제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겠나.

문재인정부도 반일 감정에 편승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상대에 중상을 입히고 우리도 치명상을 당해선 곤란하다. 박정희·김대중·노무현정부 등 역대 정부인들 과거사 다툼에서 완승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나. 역사의 주치의로부터 '수술은 잘됐다. 그러나 환자는 죽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명분 싸움을 유보했을 뿐이다.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 배상금 문제는 종결됐다는 일본의 입장과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우리 대법원의 판단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게 한·일 갈등의 요체다.
애초 일본이 외교 이슈를 빌미로 경제보복에 나선 데 대해 국제여론도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와 역순으로 외교적 담판에 대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내달 2일 열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양국이 정치적 접점을 찾을 호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