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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로 성인용품?"…리얼돌 논란→남녀갈등 비화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 청와대 청원 20만 돌파 이에 '리얼돌 허용해달라' 반대 청원 올라오기도 "여성인격 침해" vs "남성 잠재적범죄자로 보나" 온라인상 남녀갈등 양상…전문가 "1차원적 공방" "법·제도 논의 및 성숙 행위 유도하는 교육 필요"

"내 얼굴로 성인용품?"…리얼돌 논란→남녀갈등 비화
【서울=뉴시스】'리얼돌'수입·판매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

【서울=뉴시스】고가혜 기자 = 대법원이 최근 '리얼돌'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낸 가운데, 리얼돌 판매에 대한 논란이 단순 찬반양론을 넘어 남녀 간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리얼돌은 실제 인간 신체와 비슷하게 만든 성인용품이다. 남성 리얼돌도 제작되기는 하나 여성의 경우가 더 일반적이며, 실사화 수준에 따라 몇십만원부터 몇천만원까지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4일 법원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6월27일 한 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낸 리얼돌 수입통관보류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해외 제작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하면서 그 상용화를 사실상 허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대법원 판결 직후 일부 판매 대행업체가 "원하는 얼굴(연예인·지인 등)로 맞춤 제작을 할 수 있다"며 홍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심지어 아동의 신체를 본뜬 리얼돌도 등장하면서 논란은 거세졌다.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지난달 8일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지난달 31일 동의 수 20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진행 중인 청원 중 '유승준 입국금지'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청원이 올라온 뒤 여성 네티즌들은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성인용품이 될 수 있다니 끔찍하다", "여성과 아동이 성적 대상화 되고 있다", "초상권과 여성 인격권 침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반박하는 의견이 나왔다. 온라인상에는 "여성 성인용품과 동일한 하나의 도구일뿐"이라는 의견이 제기됐고, "오히려 성적 욕망을 해소해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앞선 청원에 반박해 리얼돌 수입을 허용하자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야동도 성매매도 불법인데 이 정도의 자유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 이 청원에는 지난 2일 기준 1600여명이 동의를 눌렀다.

"내 얼굴로 성인용품?"…리얼돌 논란→남녀갈등 비화
【서울=뉴시스】리얼돌 판매대행 사이트 캡처
문제는 이 논란이 점점 근거 없는 공격성 발언으로까지 번진다는 것이다.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이 리얼돌에 만족하지 못해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거나 "강간 인형"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고, 이에 일부 남성들은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반박하거나 "워마드·트페미(트위터 페미니스트)의 논리"라고 맞선다.

전문가들은 리얼돌의 사용 자체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남녀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양성평등 관련 전문가는 "페미니즘에서도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담론이 달라져야 한다"면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성적 욕망의 주체로서 의식이 높아지면 사람이 아닌 마스터베이션(자위) 기구를 통해 경제적으로 성적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인형을 만든다거나 성적 욕망을 분출하지 못하면 강간 등의 범죄 행위가 발생한다는 담론은 그 자체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공방은 상당히 1차원적인 논리"라고 지적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AI도 나오는 등 앞으로 관련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성인용품도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모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남성이 적이라는 주장은 공감받기 어렵겠지만 모든 여자가 다 김치녀니 하는 주장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면서 "남녀간 존중하는 문화나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리얼돌에 대한 법적·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이산의 정혜선 변호사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나 현행법상 처벌에는 한계가 있고 소비행위도 외부에 드러나기는 어려운 편"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제작·판매·사용에 대한 규제를 입법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리얼돌이 인형인지 음란물인지 개념 논의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법 제도 뿐 아니라 성폭력 예방교육처럼 성숙한 행위를 유도하는 교육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gahye_k@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