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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비상 걸린 기업들, 대일 관계 속도조절해야

기업들이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한·일 통상마찰의 파도가 갈수록 거칠어져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일 긴급 소집한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현 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했다. 같은 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주요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그룹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비상회의를 주재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일 갈등의 최대 피해자로 꼽힌다.

이번 사태의 최상위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재계와 소통채널을 열어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5일 "삼성·현대차 등 5대 그룹 CEO(최고경영자)를 만나 대응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동은 8일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2차 회동을 가질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재계 총수들과 1차 회동을 가졌다.

현 사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에 닥친 최대 위기라 할 만하다. 정치권과 재계가 자주 만날수록 좋다. 한가지 더 바라자면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기업의 속사정을 깊이 헤아려달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조치는) 오히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더 키워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히로시마 원폭 추도식에서 "한국이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 입장에서 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았다. 양국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치권의 기세에 눌린 나머지 두 나라 기업들은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는 지난 2일 공동성명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한 것에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같은 성명서에 "외교·안보 이슈가 민간 교류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대목이 담겼다는 점도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이 유념해주기 바란다. 이미 기업들은 실적악화에다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대형악재만으로도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