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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일 냉각기 갖고 물밑협상 나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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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충돌은 자제 움직임.. '승자 없는 게임' 접어야

용광로처럼 들끓던 한·일 관계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일본은 8일 한국행 반도체 소재 1건의 수출을 허가했다. 지난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품목을 개별허가로 바꾼 뒤 처음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엄정한 심사를 거쳐 안보상 우려가 없는 거래임을 확인하고 수출허가를 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으나 추가 규제품목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한국도 맞대응을 자제했다. 당초 8일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에선 일본을 한국판 화이트리스트(가지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보류했다. 이낙연 총리는 같은 날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일본이 어제(7일) 3대 수출규제 품목의 하나인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처음으로 허가했다"고 확인했다.

우리 정부의 인내심을 높이 평가한다. 지금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현 수준에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긴급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일본의 무역보복은)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아베 총리는 무모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자유무역의 챔피언인 양 행세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경제보복을 일삼는 보호무역 국가라는 게 드러났다. 이낙연 총리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공격은 세계지도국가답지 않은 부당한 처사"라며 "자유무역의 최대수혜국으로서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한·일 관계에선 완승도 완패도 있을 수 없다. 앞으로 양국은 냉각기를 가지면서 타협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 감정을 고려할 때 공개적인 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부 여론을 의식하면 자연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상은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주고받았다. 그보다는 특사든 밀사든 물밑 협상을 통해 타협안을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고동진 삼성전자 모바일부문 사장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 "서너달은 준비되어 있지만 이를 넘어서 지속되면 상당히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말이다.
기업은 당장 소재·부품 조달이 급하다. 길게는 몇년이 걸릴지 모를 국산화는 중장기 과제다. 정부가 그 고충을 헤아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