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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경성방직

경방(경성방직) 공장을 허물고 지은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가면 오래된 벽돌집이 있다. 경성방직 옛 사무동이다. 1936년 지어져 경성방직 사무공간으로 쓰였던 이 아담한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에 의해 건립된 산업 관련 건축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6·25전쟁 당시 공장 건물은 모두 불타 없어졌지만 이 사무동 건물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경성방직은 100년 전인 1919년 설립된 민족기업이다. 동아일보 창업자 김성수(1891~1955)와 삼양사 창업자 김연수(1896~1979)가 전국을 돌며 자본금을 마련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로 유명하다. 당시 1인1주 공모방식으로 발행한 주식은 총 2만주로 주당 가격은 50원이었다고 한다.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기치를 내건 경성방직 초대 사장은 개화파 일원이었던 박영효(1861~1939)가 맡았다.

하지만 지금의 경방을 일군 건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할 수 있는 김용완 회장(1904~1996)이다. 1938년 경성방직 지배인으로 들어가 광복 후 4대 사장을 지낸 그는 조선방직협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며 경방을 한국 방직산업의 대표주자로 끌어올렸다. 1975년 가업을 물려받은 김각중 회장(1925~2012)은 방직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유통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94년 영등포역 앞에 들어선 경방필백화점과 2009년 옛 공장터에 지은 초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가 그것이다. 영등포에 있던 공장은 대부분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일부는 경기 안산과 용인, 광주광역시 등지로 옮겼다.

경방이 이달 말을 끝으로 광주광역시와 경기 용인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실적이 악화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섬유산업의 뿌리인 방직공장이 국내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출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