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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범죄 잇따르는데…통계수치도 없는게 현실

3년전 '강남역 살인' 이후 성별·성적지향 다르단 이유로 범행대상되는 경우 늘고 있는데 수사기관은 범행동기 '기타' 분류

#. 이달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술집에 인근 주민이 찾아와 "이 곳은 동성애자가 이용하는 바(bar)다. 에이즈에 걸린다"며 영업을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술집 주인은 "지난 4개월 여간 몇 시간씩 가게 앞을 서성거리며 시비를 걸어오고 주변 상권 및 주민들에게 허위사실 유포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관은 물리적으로 위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방해 혐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술집 주인은 "꼭 흉기를 들고 휘두르거나 기물을 파손해야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여기 너희들이 있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혐오범죄'이고 '폭력'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혐오·편견 등 범죄 꾸준히 발생

국내에도 혐오와 증오, 편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혐오나 증오의 대상은 인종과 종교를 비롯해 성별·나이·성적지향 등이 다양하게 포함된다.

22일 경찰과 시민사회단체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혐오범죄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6년 5월 서울 강남 소재 노래방 인근 화장실에서 한 20대 여성이 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사건 이후 부터다. 혐오범죄는 주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갈등을 기반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성별·성적취향 등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범행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범죄를 두고 수사기관에서는 범행동기에 대한 분류에 '증오·혐오·편견' 대신 '기타'로 분류하고 있다. 경찰이 분류하는 범행동기는 생활비, 유흥비, 도박비, 허영사치심, 치부, 기타(이욕), 사행심, 보복, 가정불화, 호기심, 유혹, 우발적, 현실불만, 부주의, 기타, 미상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이 단순 혐오 또는 증오의 경우 '기타'로 분류하고 이외 부수적으로 가정 불화 등이 기저에 있을 경우 이에 해당하는 범행동기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혐오범죄 관련 통계수치가 없다. 지난 2016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증오범죄통계법안을 발의했지만 종교단체의 반대로 발의는 수 일만에 철회됐다.

■'증오범죄' 기소사례 드물어

미국의 경우 지난 1968년 인종·피부색·종교·출신 국적으로 인해 어떤 사람에게 고의적으로 간섭하도록 강요하거나 협박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1990년에 증오(혐오)범죄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증오범죄통계법을 제정해 법무부 장관 관리 아래 혐오범죄 데이터를 수집해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혐오범죄'로 기소되는 건수는 신고된 건수 대비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워싱턴DC에서 편견을 동기로 발생한 테러 건수는 지난해 204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기소되는 비율은 줄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다.


지난해 워싱턴DC에서 혐오범죄로 검찰에 넘겨진 사건 중 기소된 건은 단 3건에 불과했다. 2017년에도 증오범죄 혐의 사건 178건 가운데 54건이 검찰에 넘겨졌으나, 검찰은 이 가운데 불과 2건에 대해서만 증오범죄로 기소했다.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고,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요즘처럼 사회 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