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지소미아 파기 파장, 또 기업이 희생양인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의 파문이 일파만파다. 미국은 "실망했다"고 말했고, 일본은 한밤중에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단호히 항의한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판이다. 여기에 한·미 동맹까지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자칫 지소미아 파기가 한·일을 넘어 한·미 경제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기업인들은 좌불안석이다.

지소미아 파기를 두고 일본이 보인 반응은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고노 다로 외상은 담화에서 "극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보인 반응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문재인정부는 "미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했다"며 "미국은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외교적 수사를 생략한 채 "실망했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23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통화에서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지는 트럼프 행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한국 관료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힌트를 준 것과는 정반대였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해했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누구 말이 맞느냐를 떠나서 한·미 간에 이 같은 이견이 나타났다는 점이 불안하다. 이는 지소미아 파기처럼 중요한 결정을 두고 한·미 양국이 사전조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잖아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동맹국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경제·통상 정책은 오로지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다. 지소미아 파기에 실망한 미국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예측 불허다.

70여년 전 역사에서 비롯된 한·일 갈등이 경제보복을 넘어 한·미·일 안보공조를 흔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재계는 일본이 취한 보복만으로도 벅차다. 반도체 소재용 3개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2개 품목은 아직 한국행 수출이 묶여 있다.
한·일 간에 얽히고설킨 매듭은 손을 댈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속성이 있다. 해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알렉산더 대왕처럼 두 나라 지도자들이 단칼에 내리치는 것이다. 도대체 기업이 언제까지 한·일 역사갈등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