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처진 경제 살리려면 돈보다 규제 풀어야

재정투입 효과는 제한적
기업투자 물꼬를 터주길

정부가 4일 경제활력 보강을 위한 추가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7월 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경제활력 보강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두 달 만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어 마른 수건을 짜는 심정으로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연이은 대책 발표는 현 경제상황이 심각한 단계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발표된 대책에는 내세울 만한 내용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공공기관 투자를 1조원 늘리고, 기금에서 1조6000억원을 조성해 투자와 내수 진작에 투입하는 정도다. 공공기관 투자는 내년 집행분을 올 하반기로 앞당기는 것이고, 기금은 운용계획을 변경하는 내용이다. 어차피 쓸 돈을 포장만 바꾼 것이어서 의미 부여를 하기 어렵다.

대책에는 서민형 안심대출과 햇살론을 늘리고, 고속철도 할인상품과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확대하거나 근로·자녀장려금을 조기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런 것들은 서민생활 안정대책으로는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당면 현안인 경제활력 회복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근원적 해법을 찾지 않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땜질만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만 해도 우리 경제는 3%대 성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낮췄고, 최근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GDP물가(GDP디플레이터,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눈 값)는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경제가 갈수록 활력을 잃어가는데 재정에만 의존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경제가 어려워진 근본 원인은 투자부진에 있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2·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 1·4분기에는 감소율이 무려 17.4%나 됐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제의 활력은 민간투자에서 나온다. 아무리 재정에서 돈을 풀어도 민간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제는 회복되기 어렵다. 재정투자는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기업투자의 물꼬를 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핵심산업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산화 개발을 가로막는 요인 중에는 규제가 큰 몫을 차지한다. 최우선적으로 소재·부품·장비 분야 규제부터 과감히 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