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WTO에 日 제소해도 대화 통로는 열어놓길

한국 정부가 수출규제를 문제 삼아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일본이 7월 4일 시행한 수출제한 조치를 WTO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일 경제보복 갈등이 빚어진 지 69일 만이다.

WTO 제소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판결을 이유로 먼저 보복조치를 취했다. 경제에 정치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는 수출규칙을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WTO 규정에 어긋난다. 특정 회원국을 차별하지 말라는 최혜국대우 조항과도 충돌한다. 더구나 한국은 지난 4월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와 관련한 WTO 소송에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저력이 있다. 4년 전 일본이 제기한 수산물소송은 1심(2018년 2월)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최종심은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으로선 부끄러운 패배였다.

다만 우리는 문재인정부가 WTO 제소와 별개로 대일협상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란다. 지금 두 나라는 사사건건 부닥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했고, 한국 정부는 다음주 일본을 한국판 백색국가 명단에서 빼려 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것, 제주남단 항공회랑을 새로 짜는 문제를 놓고도 양국은 앙앙불락이다. 한·일 경제는 분업체제로 얽혀 있다. 서로 발목을 잡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WTO 제소는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2년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동안 두 나라 기업들이 입을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달렸다.
서로 감정이 틀어지면 어느새 본질은 사라지고 곁다리를 놓고 목청을 높이게 된다. 지금 한·일 관계가 꼭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본질, 곧 강제징용자 문제를 놓고 대승적인 타협에 이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