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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재계에 묻지도 않고 발표한 산재보험 확대

사회안전망 확충 옳지만
보험료 낼 기업의견 듣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방문판매원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한다. 또 1인 자영업자의 산재보험 가입 문턱도 획기적으로 낮추는 길을 마련한다. 당정청은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방안' 협의회를 열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이 제도가 산업현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내년 7월부터 최대 27만여명의 특고직 근로자가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사회복지에서 소외된 특고직에게 사회안전망 혜택을 주고 권익을 보장하는 것은 옳은 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도 시행에 앞서 짚어봐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우선 특고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정책이 일자리 감소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인건비가 늘어나면 사업주는 고용을 줄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대표적 특고직인 보험설계사의 4대보험 가입이 의무화될 경우 최대 38.7%의 종사자가 인력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출되기도 했다.

산재보험은 보험료를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만큼 기업의 지불능력도 고려 대상이다. 기업이 근로자의 사회안전망을 넓힌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일종의 준조세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보험 비용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최근 고용보험료율이 6년여 만에 1.3%에서 1.6%로 오르고,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늘어난 것도 기업으로선 부담일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기업이 대부분 부담하는 협의의 준조세는 지난해 총 58조3000억원 규모로 전년에 비해 5.1% 늘어났다.

이번 조치가 산재보험 부담 주체인 기업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경총은 이날 "재원을 전액 부담하는 경영계와 상의 한번 없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자면 기업과 협의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실제 보험 대상자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보험료 징수와 관리 책임까지 풀어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다.
또 자영업자와 일부 특고직은 소득노출 등의 이유로 스스로 산재보험 가입을 꺼릴 가능성도 있다. 이미 산재보험 가입이 허용된 9개 특고직의 경우 지난해 말 현재 가입률이 13%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제도 시행에 앞서 더 세밀한 정책설계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