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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WTO 개도국 포기, 농업도 변해야 산다

정부는 25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으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농업의 개방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결정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부자 나라들이 개도국 특혜를 누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중국과 한국 등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무역보복에 나설 채비다. 브라질과 대만, 싱가포르 등은 이미 포기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거부했다.

지금 한·미 간에는 굵직한 현안이 많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미국 무역법 232조에 의한 고율관세 부과 여부를 다음달에 결정할 예정이다. 관세 부과가 결정되면 국내 자동차 산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타깃은 중국이다. 우리가 중국과 같은 편에 서서 미국에 맞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쌀 등 민감품목의 관세를 높게 설정하고 농업보조금도 많이 줄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이런 특혜는 개도국 포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유지된다. 다만 다자 간 협상이 재개되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특혜를 주장할 수 없다. 다자 간 협상은 도하개발 어젠다(DDA) 협상을 말하며 회원국 간 이견으로 현재 10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협상이 언제 다시 열릴지는 미정이다.

따라서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농산물 개방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쌀 등 주요 농산물의 관세와 농업보조금 감축의 폭이 커지고 이행기간이 짧아진다. 중장기적으로 농업에 피해가 예상된다. 다만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착실히 보완책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쌀산업을 유지하는 것이다. 농업계가 요구하는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 가능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농업의 근원적 해법은 개방하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였다. 지난 2000년(4.3%)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농업계가 정부 보호막에 안주한 결과다. 대기업 등이 보유한 풍부한 자본과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야 농업이 발전할 수 있다. 이젠 한국농업도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