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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에 간섭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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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委 지배구조 구닥다리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먼저

국민연금이 13일 경영참여 가이드라인을 놓고 공청회를 가졌다. 기업과 대화가 우선이지만, 기업이 권고를 거부하면 주총에서 정관 변경, 이사 해임 등 실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경영참여 요건·방식 등을 정하는 후속 조치의 일환이다.

이미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총에서 실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는 바람에 당시 조양호 사내이사는 연임에 실패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이 확정되면 앞으로 주총에서 대한항공과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

경영참여를 강화하려는 국민연금의 선의는 이해할 만하다. 경영진이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의 혐의로 기업이미지를 훼손하고,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 결과 주가가 떨어지면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는다.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 시점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경영참여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늘 기업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어떤가. 누가 봐도 구닥다리다. 최상위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보자.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기획재정부 차관 등 고위 관료들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하나같이 정치(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다. 민간위원들은 대부분 전문성이 떨어진다. 이렇게 구성된 20인 기금운용위가 708조원(8월말 기준)을 굴리고 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국민연금이 꼭 그렇다. 지난 3월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강연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에 대해 "국민연금은 누가 감시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 지배구조까지 개선될 때 우리 모두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경영참여에 앞서 제도적 중립성부터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좁게는 위원장을 민간 투자전문가에게 맡기는 등 기금운영위 구조를 뜯어고치고, 넓게는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전에라도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으려면 의결권 행사는 위탁 운용사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전제조건 없이 기업 경영에 자꾸 간섭하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