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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한국 경영자들

한국에선 기업 대표가 되는 순간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된다는 속설이 숫자로 드러났다. 14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285개 경제 법령에 담긴 2657개의 형사처벌 항목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기업과 기업인을 동시 처벌하는 조항이 83%(2205개)에 달한다. 한마디로 한국 경영자는 잠재적 범죄자 신세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근로나 임산부 보호를 위반하면 회사 대표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기준을 위반할 경우 회사 대표는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재해발생 시 작업중지 규정을 어긴 회사 대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회사 대표를 엄히 문책하는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법 집행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잉처벌은 경영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실제 내년 주52시간제 실시를 앞두고 중소기업 사장들은 행여 범법자로 몰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주52시간제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엔 검찰이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는 '타다'의 모회사·자회사 대표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해마다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를 보면 한국은 올해 186개국 중 29위에 그쳤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은 20위대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을 뿐 좀체 10위권 내 진입을 못하고 있다. 최상위권에는 홍콩·싱가포르·뉴질랜드·스위스·호주 같은 나라들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기업과 기업인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고의성이 없는 한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은 징역보다 벌금형 위주로 완화하는 게 옳다. 나아가 수천개에 이르는 법령상 처벌규정을 대폭 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