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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댓글은 괜찮을까요?"

[기자수첩]"댓글은 괜찮을까요?"
몇 달 전 친족 성폭행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왜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가에 대한 인터뷰였다. 취재원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여대생 A씨로, 7살 때부터 약 10년간 이복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례였다.

사실 기사를 쓰게 된 건 댓글 때문이었다. 지난 4월 '형부에게 8년간 90여차례 성폭행 당한 처제' 기사를 봤다. 기사 댓글엔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지만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8년 동안 참은 게 이상하다" "혹시 즐긴 거 아니냐" 등이었다. 이 댓글엔 꽤 많은 '좋아요'가 찍혔다.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일까? 피해자에게 직접 물어볼 참이었다.

작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A씨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에는 A씨를 소개해준 성폭행상담센터 관계자도 함께했다. 관계자는 피해 상황을 떠올릴 만한 질문은 자제해달라고 사전에 당부했다. 첫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나. 긴장이 됐다. "성폭행 관련 기사에 댓글을 보시나요?" 질문을 던졌다. 나보다 10살은 어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A씨.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아니요."

A씨는 밝고 쾌활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여대생 같았다. 그런 얼굴로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했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센터 관계자도 안심한 눈치였다. 당초에 15분을 예상했던 인터뷰는 1시간반 동안 이어졌다. 긴 시간 동안 묻는 사람도 미안한 질문을 수차례 던졌다. A씨는 가끔 눈가가 붉어지면서도 씩씩하게 답했다. 왜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느냐는 물음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연예뉴스 댓글을 잠정 폐지했다. 나는 내 기사의 댓글을 신경 안 쓰는 편이다. 다만 취재원의 도움을 받은 기사에 취재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있으면 마음이 쓰인다.


이날 인터뷰를 마친 A씨는 내게 물었다. "제 기사 댓글은 어떨까요?" 뭐라고 답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A씨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댓글은 어차피 안 보니까." 괜찮을 리 없는 괜찮다는 말에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e콘텐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