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제도권 밖 사기라며 손놓은 당국… 대응도,배상 길도 막막 ['신종 보이스피싱' 가상거래의 늪]

<중> 제 살길 알아서 찾아야 하는 피해자들
대포통장·폰에 총책은 해외로
경찰 적극 수사 어려운 상황서
결국 피해자가 증거 모아야

제도권 밖 사기라며 손놓은 당국… 대응도,배상 길도 막막 ['신종 보이스피싱' 가상거래의 늪]
김현숙씨는 주식레버리지 업체인 S인베스트 A팀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으나 당사자의 사망으로 지난달 검찰로부터 '공소권 없음' 통지서를 받았다.(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당사자 이름은 삭제) 김현숙씨 제공
김현숙씨(48·가명)는 지난 8월 자신을 S인베스트 A팀장이라고 소개하는 남성의 권유로 주식 투자 사이트에 가입했다. 김씨는 A팀장이 제공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프로그램을 설치해 수 백 만원을 입금해 주식을 거래했고, 회사 동료에게도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알려줬다. 그런데 지난 10월 어느 날 A팀장과 연락이 닿지 않았고, HTS 서버도 끊겨 거래가 중단됐다. 김씨가 해당 업체에 알고 있는 정보라곤 A팀장의 이름과 그의 전화번호, 계좌번호가 전부였다. 김씨와 직장 동료는 관할 경찰서에 해당 팀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얼마 뒤 수사기관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통보를 받았다.

■총책은 해외에…배상길 안 보여

9일 김씨와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사기 혐의로 고소된 B씨의 사건에 대해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렸다. 수사과정에서 당사자가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소장을 제출 한 뒤 3주 만에 경찰에서 'B씨가 좋지 않은 상황으로 발견됐다'고 알려줬다"며 "알고 보니 그가 알려준 A팀장이라는 이름도 가명이었고, 전화번호도 대포폰이었다"고 설명했다. B씨가 제공한 HTS로 해온 거래가 '가상거래'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가상거래 사기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의 실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김씨의 사례처럼 피해자들은 보통 전담 상담원과 소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보이스피싱 수법과 마찬가지로 총책은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다수의 중간책들이 전국 곳곳에 사무실에서 상담원들을 채용해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바지 사장'인 대표자의 이름만 바꿔서 서로 다른 상호로 다수의 법인을 설립한 뒤 투자자들이 환급을 요구하거나 덜미가 잡히면 해당 법인은 문을 닫고, 다른 법인으로 갈아탄다.

법인별로 각자의 대포통장과 대포폰이 이용되고 있어서 윗선 추적도 쉽지 않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적시에 이들을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총책까지 접근하기도, 범죄수익을 환수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민사소송은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하므로 범죄 일당이 해외로 달아나 돈을 빼돌린다면 배상받을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다.

법무법인 케이로의 김기범 변호사는 "회사의 서버가 해외에 있다면 계약자체가 해외 소재의 회사와 맺어진 경우가 많고, 총책도 현지에 있어 현실적으로 수사하기 어렵다"며 "중간에 거래를 유도한 직원들은 계약당사자가 아니기에 법적책임이 없어 사실상 피해자가 배상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정미씨(49)는 지난해 8월 주식레버리지 업체에 의해 수 천 만원을 잃은 뒤 1년 가까이 총책의 행방을 �i고 있다. 최씨는 "고소를 해도 움직이지 않는 수사기관 때문에 홀로 사건을 파헤치고 있다. 그 동안 한 업체 관련 대포통장만 13개, 대포폰만 23개 고소했다"며 "총책이 필리핀에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경찰은 적극적인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자 각자 도생…"공동소송 나설 것"

가상거래 업체들은 투자자들에게 "증권사의 HTS와 연동됐으니 믿을 만하다"고 홍보한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의 방관이 피해를 키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씨는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 증권사에 '불법업체와 HTS가 연동되지 않는다'는 경고 팝업창이라도 띄워 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 당했다"며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어 피해자들과 불법업체들에 대한 공동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공공기관에서는 제도권 밖에서 일어나는 사기 행위이기 때문에 신고를 받는 것을 넘어서 선제적인 대응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비인가 금융투자업자들에 의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불법광고들을 적발해 주의경보를 발령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사이트에 대한 폐쇄 조치를 의뢰하고 있다"며 "다만 금감원은 제도권 금융을 다루는 곳이지, 제도권 밖에 있는 업체들을 관리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기관에 의뢰하고 있지만, 그 이상 선제적 조치를 취하기엔 법률적 한계가 있다"면서 "보이스피싱의 경우 신고자가 은행에 전화하면 거래를 정지시키는 조취를 취할 수 있는데, 사감위에선 제보가 들어오더라도 불법 대여계좌를 정지시킬 권한이 없다"고 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