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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책은 징역 2년2월, 개발자는 5년… '가상거래' 혐의따라 형량 천지차

<하> 사기냐 도박공간개설이냐… 같은 범죄도 혐의 달라져
투자금 1800억대 가상거래 총괄책
선물 매매 아닌 도박공간개설 혐의
집유기간 재범에도 솜방망이 처벌
비슷한 범죄에선 ‘피해자들 기망’
사기 혐의 적용돼 형량 껑충 뛰어

총책은 징역 2년2월, 개발자는 5년… '가상거래' 혐의따라 형량 천지차
가상거래 관련 범죄는 어떤 혐의로 기소되느냐에 따라 피고인별 형량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도박공간을 개설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지만, 이용자들을 속인 사실이 인정돼 사기 혐의가 적용되면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상 선물·주식거래 사이트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운영해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운영자급 이상 피고인들의 1심 판결문 10건을 조사한 결과, 이들에게는 집행유예~징역 2년 6월이 선고됐다. 집행유예가 6건, 실형이 4건이었다.

이중 가상 선물거래 영업 총괄책 윤모씨(43) 일당은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 등은 증거금 없이도 선물거래를 할 수 있다고 회원들을 꼬드겨 실제 매매가 이뤄지지 않는 가상거래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약 2000명의 회원들로부터 투자금 1854억원을 입금 받아 거래 수수료와 투자 손실액을 수익으로 받아 챙긴 혐의다.

■집유기간 중 재범도 '솜방망이 처벌'

1심은 윤씨에게 징역 2년 2월을 선고했다. 그는 동일 범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 기소됐으나 이 같은 형에 그쳤다. 범죄 규모에 비해 비교적 낮은 형량이 선고된 데는 윤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사기'가 아닌 '도박공간개설'이기 때문이다. 형법상 도박공간개설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반면, 사기죄는 그 두 배인 징역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사기죄의 경우 부당이득액에 따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에 관한법률(특경법)이 적용돼 처벌이 가중될 수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기가 아닌 도박공간개설 혐의를 적용했다. 이용자들이 실제로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선물 시세의 등락을 예측해 '베팅'하는 것이므로 도박이라는 판단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이용자들도 실제 선물을 매매했다기보다 도박에 참여한 것으로 판단해 사기죄는 의율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업자들은 이 점을 악용해 도박장을 개설했다고 주장, 형량을 줄이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한 가상거래 업체의 상담원으로 근무했던 홍모씨(50)는 "사기죄로 신고 당한 중간책과 참고인으로 대질 심문을 했는데, 중간책의 변호인이 의뢰인을 불법도박회사에 근무했던 것처럼 몰아갔다"고 말했다.

도박장개설 혐의가 적용되면 형량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가상거래 이용자가 도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처벌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박모씨(38)는 2014년 11월부터 가상거래를 통해 65차례에 걸쳐 2억2000만원 상당의 선물옵션 거래를 한 혐의(도박)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사기죄 적용되면 형량 껑충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으나 사기죄가 적용된 피고인들의 형량은 껑충 뛰었다. 태국에서 가상 선물·주식 거래사이트를 운영한 조직에서 프로그램 개발을 맡은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51)는 1심에서 징역 6년,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김씨에게는 특경법상 사기혐의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실제 금융투자상품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가상거래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투자금을 입금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기 혐의가 입증된다고 판단했다. 도박장개설 혐의로 기소된 가상거래 총책들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것이다.

한모씨 역시 '주식10배레버리지(주식매입자금의 10배까지 대출)'를 미끼로 이용자들에게 가상거래를 유도한 일당의 총책을 맡아 사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부장검사 출신의 법무법인 동인 고민석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는 "유사한 범죄 사례라도 수사기관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기망이 있다면 사기 혐의를,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도박공간개설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정수 금융법전략연구소 대표는 "금융투자 범죄에 있어 법원이 부당이득산정을 너무 엄격하게 판단해서 범죄수익 환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 면이 있다"며 "범죄예방 측면에서 부당이득을 철저하게 환수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하려면 인지대도 들고, 별도로 변호사도 선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며 "형사소송에서 피해금액에 대한 이견이 없다면 배상명령제를 통해 절차를 하나로 끝내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