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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누더기 된 주52시간제, 아예 시행시기 늦추길

고용부, 중기 보완책 내놔
계도기간 1년으론 역부족

정부가 11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주52시간제 보완책을 내놨다. 계도기간을 1년 주고, 특별연장근로를 폭넓게 허용하는 내용이다. 근로기준법상 주52시간제는 내년 1월부터 종업원 50~299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준비가 덜 됐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월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고용노동부가 보완책을 내놓은 배경이다.

사실 국회가 발빠르게 움직였다면 굳이 행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됐다.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권고안을 국회에 냈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난 10일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탄력근로제 연장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대립을 고려할 때 연장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될 공산이 크다.

기업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고용부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근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저기 구멍을 틀어막는 통에 주52시간 근로제는 벌써 누더기가 됐다. 지난해 3월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그 첫 대상은 300인 이상 대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첫 시행을 앞두고 큰 기업들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300인 이상 주52시간제는 최장 9개월 계도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이번엔 50~299인 중소기업들에 1년 계도기간이 주어졌다. 주52시간제는 5~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2021년 7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 역시 계도기간이 주어질 게 틀림없다.

누가 봐도 이는 정상이 아니다. 법 자체가 성급하게 만들어진 탓이 크다. 그렇다면 계도기간을 고무줄처럼 늘릴 게 아니라 아예 현실에 맞게 법을 다시 바꿀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계는 고용부 시행규칙을 바꾸는 계도기간이 아니라 법을 바꾸는 시행 연기를 바란다. 이미 국회 일각에서도 50~299인을 잘게 쪼개 시행시기를 늦추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 경제는 2% 될까말까한 저성장 함정에 빠졌다. 이럴 때 노동생산성 향상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성장률을 갉아먹는다.
기업들은 슬금슬금 해외 탈출을 꿈꾼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장병규 위원장은 지난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엔 출퇴근이 없고 해고와 이직이 일상"이라며 주52시간제의 일률적 도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주당 근무시간을 국가가 정하는 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진 않은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