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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 일정 필리버스터'로 허찌른 한국당…패트法 상정 난관

본회의 첫 번째 안건 '회기 결정'부터 필리버스터 기습 신청 후순위 선거법·공수처법 상정 순서 조정해도 표결 불투명 주호영 "모든 안건 필리버스터 가능…의장, 임의로 거부 못해"

'회기 일정 필리버스터'로 허찌른 한국당…패트法 상정 난관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의원들이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입구 로텐더홀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의 지역구 세습논란과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13. photothink@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13일 자유한국당이 이른바 '4+1' 협의체에 대항하기 위해 꺼낸 전략적 카드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였다. 필리버스터는 일시적인 지연전술에 불과해 당내 회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회의 상정 첫 번째 안건인 회기 일정 결정에 관한 건부터 필리버스터를 기습 신청해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허를 찌른 셈이 됐다.

이날 오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민주당은 오는 16일까지 임시국회를 열자고 제안한 반면, 한국당은 통상 관행대로 회기 기간을 30일로 잡자고 맞서면서 회기 일정 합의는 불발됐다.

이에 한국당은 이날 오후 3시로 예정된 본회의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제372회 임시국회 회기 결정을 위한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며 '판'을 흔들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회동에서) 어차피 선거법이 논란이 될거고 필리버스터 핵심은 선거법이 될 테니 그 앞에 것(안건)은 자연스레 처리될 거라고 했지, 필리버스터를 어떤 것에 대해 한다, 안 한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한 적 없다"며 "필리버스터를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국회법에 보장된 권리"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첫 번째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전략은 4+1 협상 난항과 맞물려 효과가 배가 됐다.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이 예고된 12월 임시국회의 회기 결정을 위한 안건부터 필리버스터가 걸리면서 본회의는 개회도 못한 채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이날 본회의가 열릴 경우 국회가 처리할 예정인 안건은 모두 216건이었다. 공직선거법은 210번, 그 다음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3개법 순으로 차례로 상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본회의 첫 번째 안건부터 필리버스터가 작동되면 선거법과 공수처법 상정, 표결은 불투명하게 된다.

'회기 일정 필리버스터'로 허찌른 한국당…패트法 상정 난관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교안(왼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심재철(오른쪽) 원내대표가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19.12.13.kkssmm99@newsis.com
여기에 4+1 협상이 원활하게 풀리지 않아 민주당과 범여권 군소 야당 입장에서 서둘러 본회의를 열 필요성이 없었다는 점도 한국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정치권에서 필리버스터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지만 한국당은 관행에 맞서 '전례'를 들어 반박했다.

통상 관행대로라면 정기국회나 임시국회 회기 일정은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간 합의로 결정했던 만큼 회기 일정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간혹 여야 간 회기 일정에 이견이 있더라도 대체로 원만한 협의로 풀어온 게 관행이었다.

이러한 관행을 들어 문희상 국회의장이 회기 일정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자유한국당이 과거 '전례'를 들고 나오면서 기류는 급변했다.

이날 한국당이 '제372회 임시국회 회기 결정을 위한 안건'에 신청한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제106조 2항(무제한토론의 실시 등)에 근거한다.

'회기 일정 필리버스터'로 허찌른 한국당…패트法 상정 난관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두번째) 주재로 13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이 열려, 각 당 원내대표들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심재철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2019.12.13. photo@newsis.com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무제한 토론을 할 경우,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면 된다. 이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해 무제한토론을 실시해야 한다.

'회기결정의 건'은 명백히 본회의에 부의되는 안건에 해당하고, 토론 대상을 의사일정에 올린 안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필리버스터 신청은 문제될 게 없다는 게 한국당의 국회법 해석이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13년 9월2일 본회의 의사일정 안건으로 올라온 '제320회 국회(정기회)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 당시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회의록에도 회기 결정건은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으로 기록돼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은 '제320회 국회(정기회) 회기결정의 안건(의사일정 제1항)'을 상정한 뒤 "의사일정 제1항에 대해서는 토론 신청이 있으므로 토론을 하도록 하겠다"며 김미희 의원의 토론을 실시했다.

당시 김 의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린 이석기 통진당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발하며 "본회의가 열린 것에 대해서 심각한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항의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회기결정 건에 대한 토론은 법과 관례상 거부할 수 없는 만큼, 이를 거부하려면 국회법을 '회기결정의 건은 안건에서 제외한다'라고 개정해야 법에도, 상식과 이치에도 맞는다는 게 한국당의 설명이다.

'회기 일정 필리버스터'로 허찌른 한국당…패트法 상정 난관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9.12.13.kkssmm99@newsis.com
한국당은 보도자료에서 "국회의장은 회기결정의 건에 대한 무제한토론을 허용해야 의회 질서를 존중하는 원칙과 상식이 있는 국회의 수장이 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국회를 민주당 정권의 하부기관으로 전락시킨 입법부 파괴 독재자 국회의장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판사 출신인 주호영 의원은 "국회법 제7조에 의하면 국회는 임시회를 열면 제일 먼저 회기를 결정하도록 한다. 오늘 (본회의가) 열리면 회기를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한다"며 "그 회기 결정은 본회의에서 의결로 결정하게 돼있다. 국회법 제106조1항에 의하면 부의된 모든 안건에 관해서는 필리버스터 토론이 가능하게 돼있고, 의장은 이를 임의로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예외적으로 예산안부수법안만 무제한 토론이 제외돼있지, 모든 법안은 무제한 토론이 가능하다"며 "부의된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가 가능하다. 심지어 제헌국회부터 관행이던 인사 안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요구했다. 실제로 회기 결정에 관해 토론하고 표결로 결정한 게 2건이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아 의원은 "쪼개기 임시국회 안건에 대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나"라며 "회기 결정도 필리버스터 안건이라는 의견을 들었다. 저희는 빨리 본회의가 열리기를 원한다.
의장님이 빨리 본회의를 열어주기를 바란다"고 압박했다.

심 원내대표는 "민주당에서 본회의를 열자고 의장에게 요구했지만, 의장은 한국당과 합의하지 않으면 의사봉을 잡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국회 사무처에서도 이미 회기 결정의 건이 필리버스터 대상 안건으로서 판단한 걸로 전해듣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장도 합의해서 오라고 퉁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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