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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대만 총통

황제 후궁으로 궁에 들어와 황제자리까지 올랐던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624~705년). 나이 열셋에 태종(626∼649년 재위)의 후궁이 된 뒤 12년 후 태종이 죽고 출가하지만, 2년 후 고종(649∼683년 재위) 후궁으로 다시 궁에 들어와 정실을 내쫓고 황후 자리를 꿰찼다. 그 후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로 황태자·황제에 올린 뒤 심지어 스스로 황제가 된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인이 측천무후다. 살벌한 그의 공포정치 속에서도 당대 백성들 생활은 평안했다고 전해진다. 무후 이후 중국 권력을 한손에 쥐었던 여성으로 청나라 말 실세 서태후가 있지만 그는 황제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측천무후 이후 1300여년 만에 등장한 중화권 여성 최고지도자가 2016년 대만 총통이 된 차이잉원이다. 총통(總統)은 중화민국의 국가원수를 일컫는다. 대통령의 중국어 번역 명칭이 총통이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대만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영국 유학을 거친 엘리트다. 대만 국립정치대에서 10년간 법학교수를 지냈고, 2000년 천수이볜 총통 시절 정치에 입문한 뒤 선거 때마다 민주진보당에 승리를 안겨준 '선거의 여왕'. 합리적이면서 진보적인 캐릭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난국을 돌파했다. 하지만 시련도 왔다. 총통 취임 후 나락으로 떨어진 경제상황으로 2018년 지방선거에선 대참패를 겪었다. 차기 총통 출마도 힘겨워 보였다. 그랬던 그가 11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역대 최다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은 817만표(57.1%)를 얻어 2위 국민당 한궈위(552만표, 38.6%)를 크게 압도했다.

그의 역전극은 지난해 여름 이후 홍콩을 강타한 반중국 열기의 힘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중국'으로 묶이고 싶지 않은 대만 젊은이들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친 차이 총통에게 몰표를 던졌다.
차이 총통의 당선 직후 첫 일성도 이에 대한 화답이었다. 그는 중국을 향해 "어떤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양안 관계가 첨예한 긴장국면이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는 그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