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사외이사 임기 제한은 또다른 사전규제다

기업 자율성 침해 소지
사후 책임 강화가 대안

기업의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곧 시행된다. 오는 3월 주총 시즌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법무부는 시행령을 1년 유예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이 취임한 뒤 강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만간 주총을 치러야 할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상장사 560여개사가 총 720여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뽑아야 할 처지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기업 경영에 너무 깊숙이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크다.

정부가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한다. 사외이사제는 외환위기의 산물이다. 대주주, 특히 오너의 전횡을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전직 관료와 판검사, 변호사, 교수 등 쟁쟁한 인물을 사외이사로 영입했지만 이사회를 견제하기는커녕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99%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에도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불법·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재계도 반성해야 한다.

그 대책으로 나온 게 임기제한 카드다. 법무부는 또 퇴직 임원이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어떻게든 사외이사들이 오너 또는 CEO와 한통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임기제한이 과연 최상의 카드인지는 의문이다. 공기업이라면 모를까, 민간기업에서 사외이사 임기를 국가가 강제로 묶는 것은 경영자율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그렇잖아도 기업들은 문재인정부의 반기업 정책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한다. 국민연금이 주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지침)가 대표적이다.

규제 관점에서 보면 사외이사의 6년 임기제한은 또 다른 사전규제다. 정부는 겉으론 현행 사전규제를 네거티브 규제, 곧 사후규제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다 풀어준 뒤 부작용이 생기면 그때 가서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다금지법에서 보듯 현실에선 되레 사전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사외이사 임기를 미리 제한하자는 발상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사외이사 선임, 임기 등은 기업 자율에 맡기되 사후 책임을 강하게 묻는 방식이 더 낫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오너와 친한 사외이사도 이사회 안건에 함부로 찬성하지 못한다. 사외이사가 더 이상 거마비나 챙기는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란 인식을 심는 효과도 있다. 법무부의 재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