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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업가 신격호 큰 발자취를 남기고 지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타계했다. 향년 99세.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 기업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창업한 뒤 한·일 두 나라에서 큰 회사를 일군 기업인은 사실상 신 명예회장이 유일하다. 롯데는 식품·유통·관광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뤘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와 함께 이병철(삼성), 정주영(현대), 구인회(LG), 최종현(SK) 등 1세대 창업자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그룹이 한국 재벌 순위 5위에 오르는 토대를 놓았다. 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승계는 옥의 티로 남는다. 신 명예회장은 신동주, 신동빈 두 아들을 뒀다. 장남 동주는 일본 계열사, 차남 동빈은 한국 계열사를 맡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5년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동주·동빈 형제는 경영권을 놓고 크게 다퉜다. 이 과정에서 고령의 신 명예회장도 재판에 불려다니는 곤욕을 치렀다. 롯데를 보는 여론도 크게 나빠졌다. 신 명예회장이 더 이른 시기에 경영권 승계 절차를 마무리짓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일본 기업이 한국 롯데그룹을 소유하는 낡은 지배구조 역시 숙제로 남았다.

이제 롯데는 명실상부한 신동빈 시대를 맞았다. 신 회장의 어깨는 무겁다. 지난 몇 년간 롯데는 가족 간 경영권 다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국정농단 사건에 휩싸이는 바람에 미래에 대비할 시간을 놓쳤다. 핵심사업인 유통업(백화점·마트)은 디지털 혁명의 여파 속에 성장이 정체됐다. 며칠 전 신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유통과 화학 부문의 실적이 동반하락한 것은 그룹 창립 이래 처음"이라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어중간한 대응으로는 성장은커녕 생존도 위태롭다"고 말했다.


신격호는 지난 1941년 스무살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우유 배달을 하면서 기업가의 꿈을 키웠다. 현재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이 처한 어떤 어려움도 창업주가 겪은 시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롯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주의 기업가정신을 배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