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오죽하면 규제개혁비례당 이야기가 나올까

벤처기업인들 창당 추진
여야 정치권에 강한 불신

벤처 기업인들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당을 세운다고 한다. 가칭 규제개혁비례당이다. 정식 당명과 창당선언문은 오는 23일 발표될 예정이다. 의회에 대표자를 보내 차기 21대 국회에서 벤처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목표다. 오죽하면 벤처인들이 스스로 창당에 나섰을까 싶다. 규제공화국의 실상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자화상이다.

그럴 만도 하다. 정치권은 오로지 표에 목을 맨다.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정당은 단 한 곳도 없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해 타다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국토위엔 여당 의원도 있고, 야당 의원도 있다. 하지만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행사할 표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다.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인수합병(M&A)도 정치권에서 제동이 걸렸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M&A 승인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에 공개 압력을 넣었다. 을지로위원회는 연초 기자회견에서 "배달앱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예상되는 우려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M&A 심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힌 셈이다. 공정위가 정치권 압력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벤처 기업인들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겉으론 혁신을 말하지만 속내는 다른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붉은깃발법을 언급하면서 인터넷은행에 대한 규제혁신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 뒤엔 혁신보다 포용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작년 말 확대경제장관회의 토론회에서 "포용이 혁신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포용은 필연적으로 혁신과 충돌한다. 포용을 중시하면 혁신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타다금지법을 예로 들면 포용은 택시, 혁신은 타다다. 이 싸움에서 타다는 택시에 졌다.

규제개혁비례당 창당을 추진하는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지난해 2월 규제개혁 10대 과제를 내놨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허용, 후규제' 원칙을 도입해 달라는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요구도 아니다. 문재인정부는 틈날 때마다 규제시스템을 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혁신기술이 나오면 일단 허용이 원칙이다. 현실은 딴판이다.
포용을 앞세워 사전규제의 벽을 점점 더 높이 쌓고 있다. 보다 못한 벤처 기업인들이 정당 창당에 뜻을 모았다.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일이 규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