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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보잉의 굴욕

윌리엄 E 보잉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예일대 공대를 중퇴하고 목재업을 했다. 스물여덟이었던 1909년, 알래스카 태평양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탄 비행기를 봤다. 그때 항공기에 강한 운명을 느꼈다. 글렌 마틴사에서 비행기를 직접 샀고, 마틴으로부터 조종법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비행기가 고장나 수리를 요청했는데, 부품 조달에만 수개월 걸린다는 말을 듣고 분개한다. 친구인 조지 웨스터벨트에게 달려가 비행기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동의했다. 둘은 시애틀 근교 두와미시 강변 낡은 보트공장을 사들여 항공기 제작소를 세운다. 이때가 1916년이다. 세계 최대 항공사 보잉이 탄생한 순간이다.

보잉을 키운 건 1차 세계대전이다. 강력한 군용기 제작사로 거듭나는데, 전설의 폭격기 B-17, B-29 등이 이때 나왔다. 당시 더글러스사가 장악했던 민항기 시장에선 힘을 못 썼다. 반전은 모든 제트여객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707 개발과 함께 이뤄진다. 그 후 중거리여객기 제작수요가 폭증하면서 727, 737 등을 내놓고 히트작에 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여객기 737은 꾸준히 새로운 성능을 추가했다. 그 4세대 버전이 737맥스다.

이 보잉 737맥스가 지루한 공방 끝에 이달 전격 생산중단됐다. 지난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지난해 3월 에티오피아항공기 추락 참사 여파다. 737맥스 참사는 30여년 승승장구해온 최고경영자(CEO) 데니스 뮬런버그도 불명예 퇴진시켰다. 새 CEO 데이브 캘훈은 미 당국 운항재개 승인 전에 생산재개를 원한다고 22일 밝혔지만 쉽진 않아 보인다. 1970년대 출발해 제품 라인업에서 비교도 되지 않던 유럽 에어버스한테도 보잉은 결국 밀렸다. 지난해 인도물량은 겨우 380대였다.
여론의 뭇매에도 방위산업 덕분에 근근이 버텨온 주가도 무너지고 있다. 월가는 보잉 쇼크가 올해 미국 제조업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예도, 주가도 다 잃고 민폐기업으로 보잉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